군부에 휘둘린 日王…개혁 꿈 꺾여버린 고종…아픈 과거 쓰디쓴 교훈◇쇼와사1, 2/한도 가즈토시 지음·박현미 옮김/455쪽, 495쪽/각 1만8000원/루비박스◇고종 44년의 비원/장영숙 지음/376쪽·1만8000원/너머북스
일본 ‘슈칸분슌(週刊文春)’ ‘분게이슌주(文藝春秋)’ 편집장을 거친 한도 가즈토시 씨의 ‘쇼와사’는 부제가 ‘일본이 말하는 일본제국사’다. 쇼와(昭和)는 히로히토(裕仁) 일왕 시대인 1926∼1989년 사용된 연호. 이 시기를 저자는 다양한 사회상을 통해 비판적 시각으로 읽어낸다.
쇼와사에서 가장 극적인 하루는 1945년 8월 15일이다. 일왕은 이날 방송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항복 사실을 알렸다. 저자는 이날을 기점으로 일본이 온통 전쟁에 몰입하던 시기와, 전쟁의 후유증을 겪었던 시기로 쇼와사를 구분해 제국주의가 일본에 드리웠던 그늘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왕의 정복(正服)인 곤룡포를 입고 있는 고종.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저자는 태평양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군국화 과정을 얘기하면서 당시 육군이 만든 팸플릿의 한 구절을 들어 그때의 분위기를 전한다. 팸플릿의 내용은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 문화의 어머니다’라는 것. 전쟁은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아버지이고 문화의 어머니이므로 전쟁에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어야만 하다는 이야기였다.
태평양전쟁을 벌인 직후 일본인들의 머릿속에는 ‘승리’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그러나 쇼와 20년인 1945년이 되자 일본은 이미 말세가 된 듯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어디를 보든 희망을 품을 만한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항상 굶주렸고 전쟁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났다.
1945년 3월 10일 미군의 도쿄대공습 직후 폐허가 된 후카가와 지구를 둘러보고 있는 히로히토 일왕(오른쪽). 사진 제공 루비박스
이렇게 쉽게 모습을 바꾸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국가 발전에는 도움이 됐다. 최강의 군대 건설을 향해 있었던 모든 힘을 과학이나 문화, 산업의 향상에 집중하는 것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이런 와중에 발발한 한반도의 6·25전쟁은 일본으로선 경제부흥의 틀을 닦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종 44년의 비원’은 ‘무기력한 군주’로 각인된 고종의 참모습을 들여다보자는 논의에서 출발한 책. 역사학자인 저자는 “고종에 대한 상식적인 평가와 기억이 이 같은 수준인 것은 일제의 식민사학과 광복 후 이를 확대 재생산해 온 한국 사학계에서 연유한다”고 봤다.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에 정박한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대표. 동아일보 자료 사진
문제는 주변에 있었다. 저자가 보기에 대한제국 내부의 권력 쟁탈전과 친러, 친일 등 외세를 업은 계파 간의 대립과 갈등은 고종의 운신 폭을 좁게 만들었다. 황제보다 일제에 더 친밀감을 보인 관료군이 형성된 것은 고종의 비극을 넘어 대한제국의 비극이 됐다. 고종과 신하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가운데 적전(敵前)분열을 일으킨 것이 망국의 길을 걷게 된 요인 중 하나라고 저자는 봤다.
‘쇼와사’의 저자 한도 씨의 말처럼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역사는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역사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함께 읽어 볼 만한 책
‘꼬레아 러시’(효형출판)는 대한제국 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의 행적을 추적한 책. 한국인의 편에서 일제에 맞선 언론인 매켄지, 차가운 시선으로 한국의 비극을 지켜본 프랑스 공사 프랑댕 등 다양한 면면이 등장한다. ‘1910년 오늘은’(서해문집)은 1910년 신문 기록을 통해 당시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대일본제국 붕괴’(바오)는 일본의 패망이 동아시아에 어떤 역사적 유산을 남겼는지 서술한 저작. ‘임페리얼 크루즈’(프리뷰)는 1905년 아시아에 온 미국 순방단의 행적을 통해 루스벨트가 추구한 아시아 정책의 실체를 파헤쳤다. 순방단은 ‘미국과 일본은 각각 필리핀, 대한제국 강점을 서로 묵인한다’는 밀약을 체결하는 비밀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