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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史·哲의 향기]고전문학서 찾은 대중문화 코드…욕망과 갈등의 생생한모습 포착

입력 | 2010-08-14 03:00:00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오세정·조현우 지음/324쪽·1만4000원/이숲




고전문학 ‘옹고집전’과 복제인간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일랜드’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답은 바로 ‘자아정체성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두 작품 모두 ‘가짜 나’와 ‘진짜 나’가 등장해 갈등을 겪는 내용이 등장한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나다움’, 혹은 ‘나만의 무엇’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자아 동일성 논의’라고 부른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두 저자는 고전문학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성찰 지점을 찾아내 현대 대중문화와 연결시킨다. 현재와 접점이 없어 보였던 고전문학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피상적으로 느꼈던 대중문화 작품을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심청전’ ‘이생규장전’ ‘유충렬전’ 등 고전문학 12편을 다뤘다.

진짜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은 신체 특징, 기억까지 똑같고, 가짜 옹고집 역시 진심으로 자신이 진짜라고 믿는다. 옹고집은 결국 스스로 진짜임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 채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냈던 학대사의 도술로 겨우 진짜라고 인정받는다.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여주인공 조던2델타가 복제를 의뢰한 본체 톰 링컨과 복제인간 링컨6에코를 구분할 수 있었던 근거는 링컨6에코가 가진 진솔한 사랑의 눈빛이라는 주관적 기준뿐이었다. 저자는 “‘옹고집전’은 나와 나의 복제인간을 구분하는 확실한 근거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시습의 한문소설 ‘이생규장전’과 영화 ‘원스’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음(知音)’이다. ‘이생규장전’에서 선비 이생은 최랑이라는 여인과 시를 나누며 사랑에 빠진다. ‘원스’는 길거리 가수와 이민자 여성이 음악으로 교감한다는 내용이다. 시와 음악으로 소재는 다르지만 모두 ‘나를 알아주는 짝’을 만나 사랑을 맺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이야기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최랑은 홍건적의 난 때 도적의 손에 죽는다. ‘원스’에서는 런던으로 함께 떠나자는 남자의 청을 여자가 거절한다.

저자는 이런 결말이 필연이라고 파악한다.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진 것은 상대가 재능은 뛰어나지만 고독했던 나를 제대로 알아줬기 때문이다. 나의 뛰어남을 알아줬고, 동시에 상대 또한 나와 통할 만큼 뛰어나다고 믿기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결국 이 사랑을 영원히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현실에서 사라지도록 하고 완벽했던 한때만을 남겨야 한다. 그 사람이 없을 때에만 유지되는 사랑, ‘원스’와 ‘이생규장전’ 속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진짜 모습이다.

저자들의 손을 거쳐 심청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희생양이 돼 외계인을 몸에 품은 채 용광로로 뛰어드는 여전사 리플리(영화 ‘에일리언’)와 만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선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운 채 결혼제도에 종속됐다 다시 탈출하는 여성으로 희곡 ‘인형의 집’ 속 노라와 겹친다. 이 같은 저자들의 시도는 고전문학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준다.

“이야기의 메시지가 교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그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현실을 반추할 수 있기에 의미 있는 것이다. 옛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와 사람들의 욕망과 갈등의 생생한 모습을 포착해야 한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추잡하고 비겁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