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차례 목숨건 방일… 朝-日평화 개척”
“조선시대판 ‘햇볕정책’… 1443년 계해약조 이끌어
좋은 인재 믿고 일 맡겼던 세종의 리더십도 빛나”

일본 쓰시마 섬 향토사학자인 나가도메 히사에 씨(오른쪽)가 7일 오후 쓰시마 섬 원통사를 방문한 한국 답사단에 충숙공 이예 선생의 공적비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선생의 18세손인 이수철 씨,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장, 오다기리 유코 씨, 유종현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전 요코하마 총영사), 이명훈 고려대 교수. 사진 제공 김태균 연구원(세종리더십연구소)
일본 군악대와 한국 국악연주단의 풍악 소리가 뒤섞여 울리는 가운데 통신사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종모 부산시의회 의장은 통신사의 수장인 정사(正使) 역할을 맡아 가마를 타고 주민들에게 연방 손을 흔들었다. 수행원 등 500여 명으로 구성된 행렬은 시청 앞에서 항구 내 광장까지 30분 동안 행진을 했다. 이날 밤에는 성대한 불꽃놀이 행사도 벌어졌다.
멀리서 통신사 행렬을 바라보던 이수철 씨(74)는 내내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조선 초기 통신사로 평생 일본을 40여 차례 방문하며 왜구가 납치해 간 민간인 667명을 송환하고 두 나라의 문화 교류 증진에 기여한 충숙공 이예(李藝·1373∼1445) 선생의 18세손이다.
▶본보 6월 21일자 A31면에 관련기사 외교부 올해 ‘외교를 빛낸 인물’ 선정… 조선 초기 통신사 충숙공 이예
이 씨는 7일 2005년 충숙공 선양회가 섬 중부지역의 원통사에 세운 공적비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또 이예 선생이 23세 때인 1396년 왜구에 잡혀가는 울산군수를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쓰시마에 잡혀와 3개월 동안 억류됐던 화전포도 방문했다.
“직접 와서 보니 가슴이 뭉클하네요. 그 옛날 할아버지께서 20일에서 한 달씩 배를 타고 일본에 온 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어려웠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였다면 못했을 일이에요.”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장, 이명훈 고려대 교수, 유종현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전 요코하마 총영사)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답사팀은 4일 일본에 도착해 6일까지 이예 선생이 일본 국왕을 상대로 정상외교를 폈던 교토를 방문했다.
이예 선생의 대일 외교 철학은 조선시대판 ‘햇볕정책’이라 할 만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선생은 67세이던 1440년 세종대왕에게 “국가대의(國家大義)로 타이르고 그 삶을 이롭게 하면 왜인들이 성심으로 따를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명훈 교수는 “외교는 명분만으로도, 실리만으로도 안 되며 명분과 실리를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지금도 일본뿐만 아니라 북한과 제3세계 국가에 적용할 수 있는 외교 철학”이라고 풀이했다.
동행한 연구자들은 이예 선생이 철학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세 가지 힘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병련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좋은 인재를 오래 쓰며 키우는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국가운영 시스템이 없었다면 이예 선생의 업적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8세 때 왜구에게 잡혀간 어머니를 찾겠다는 개인적인 동기도 이예 선생이 평생 대일 외교에 ‘몰입’했던 동기였다. 박현모 연구실장은 “최고지도자의 배려와 개인의 헌신이 맞아떨어지면서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커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8일 쓰시마 섬 아리랑 축제에서 만난 오다기리 유코 씨(여)는 1993년부터 17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 축제의 행렬에 참여하며 한일 민간 우호사절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통신사를 주제로 기록영화를 만들고 있는 일본인 영화감독 이누이 히로아키 씨와 주연 여배우 이리타니 마이 씨 등도 이날 축제를 지켜봤다.
외교부는 답사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교토 시내에 이예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이예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방송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전을 여는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유종현 명예교수는 “한일병합 100주년에 이예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큰 의미가 있고 향후 한일관계가 서로 평화롭게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토·쓰시마=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