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李穀(이곡)은 ‘趙苞(조포)의 忠孝에 대해 논한 글’에서 ‘임금과 어버이 사이에는 선후의 관계가 있는가? 임금에 대한 충성과 어버이에 대한 효성 사이에는 본말의 관계가 없는가?’라는 두 문제에 대해 논술했다. 조포는 후한 때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선비족의 공격을 막아내는 공을 세웠지만 어머니와 아내가 적에게 살해되는 것을 방치했다.
이곡은 효와 충에는 선후가 있다고 했다. ‘주역’ ‘序卦傳(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뒤 남녀가 있으며, 남녀가 있은 뒤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 부자가 있으며, 부자가 있은 뒤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뒤 상하가 있으며, 상하가 있은 뒤에 예의를 둘 곳이 있게 된다’고 말한 것에 근거한다. 한편, 이곡은 효와 충은 事로 보면 둘이지만 理로 보면 하나라고 논했다. 이것은 ‘효경’ ‘廣揚名(광양명)’章의 ‘어버이를 효성스럽게 섬기기 때문에 그 효성을 임금에게 옮겨 충성을 바칠 수 있다’는 말에 근거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