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첫 출발은 좋지 못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얘기다. 조별리그 H조에 속했던 스페인은 남아공 월드컵 출전 전까지 A매치 12연승을 달리던 '무적함대'로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혔다.
이런 스페인이 첫판에서 스위스에 0-1로 덜미를 잡혔다. 일부 언론은 '남아공 월드컵 최대 의 이변'이라며 떠들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역시 우승후보'라는 평가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스페인은 첫판 패배 이후 전열을 재정비한 끝에 6연승을 달리며 결국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첫 경기는 '거의 완벽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스페인에게도 큰 부담이었다는 게 결과론적으로 증명이 됐다.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거나 최소한 무승부를 이뤘던 감독들은 월드컵 등에서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데 비해 패했던 감독들은 나중에 크게 웃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대회 첫 16강 목표를 달성한 허정무 감독이 대표적이다.
히딩크 감독은 2001년 1월 노르웨이와의 데뷔전에서 2-3으로 패했고, 허정무 감독 역시 2008년 1월 칠레와의 첫 경기에서 0-1로 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축구대표팀 조광래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지난 11일의 나이지리아전 결과에 대해 필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정교하고 빠른 패스 위주로 나이지리아를 공략하는 한국대표팀의 플레이는 남아공 월드컵 우승팀인 스페인의 경기를 떠올리게 했다.
사실 조광래 감독은 스페인축구를 깊이 연구한 지도자다. 예전부터 유럽, 특히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경기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면서 전술을 연구했고, 지휘봉을 놓고 쉬는 공백기에는 틈틈이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 지역을 돌며 현장에서 축구 공부를 하기도 했다.
조 감독은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자마자 선수들에게 '해서는 안 될' 3가지를 전달했다. '조광래의 3불(不) 원칙'이 바로 그 것.
그의 '3불 원칙'은 △수비수를 등지고 볼을 받지 말 것 △투 터치 이상 하지 말 것 △그라운드에서 서 있지 말 것이다. 이야말로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 사커'에 패싱 위주의 전술이 결합된 스페인 식 축구를 펼치기 위한 기본이 되는 사항이다.
조 감독은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 후 "대표팀 훈련을 한 지 2~3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선수들이 전술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었다"며 "오늘처럼 내용이 좋은 경기를 하면서 승리하는 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스페인 식 축구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더 강하고 빠른 새로운 형태의 한국축구를 선보이겠다는 게 조 감독의 복안.
데뷔전을 멋진 경기로 장식한 조 감독. 하지만 그가 마냥 좋아만 하지 않았던 것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까지 갈 길이 너무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