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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세이/이은희]환경 무관심이 우리 딸들 성조숙증 키운다

입력 | 2010-08-18 03:00:00


여섯 살 난 여자아이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아이는 고혈압, 관절염, 뇌중풍(뇌졸중)을 차례로 겪으며 혼수상태에 빠진다. 연이어 나타나는 아이의 증상에 의료진은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겪는 증상들이 보통 아이들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성 이변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는 여섯 살임에도 벌써 초경을 경험했을 정도로 성숙해 있었다.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조숙해지더니, 급기야 어른들이나 겪는 병에 걸린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이만큼 무서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고약한 이야기가 미국 의학 드라마 ‘하우스’에서 등장한 에피소드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위와 같은 증상을 겪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성조숙증이란 말 그대로 사춘기가 일반적인 시기보다 일찍 시작되는 것이다. 학자에 따라 정의는 다르지만 보통 9세 이전에 성적 성숙이 시작되면 성조숙증이라고 칭한다.

생식샘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GnRH)이 만들어지는 중추신경계나 성호르몬을 분비하는 생식기, 부신에 종양이 생기는 경우 호르몬 불균형으로 성조숙증이 나타날 수 있다. 더 무서운 것은 환경호르몬에 아이들이 노출된 경우다. 환경호르몬은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화학물질 중 생물체 내에 흡수돼 호르몬이 관여하는 내분비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기존 환경호르몬 연구를 보면 동물의 경우 다이옥신 등의 다양한 내분비계 장애물질에 의해 수컷의 생식기 기형과 불임, 암컷의 생식기 기형과 종양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어 왔다.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다. 2000년 푸에르토리코 소녀들의 집단 성조숙증 현상에서 해당 소녀들의 혈중에 환경호르몬으로 규정된 프탈레이트의 농도가 유의하게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어린 시절은 어른이 되기 위해 곧 지나가버릴 정류소가 아니라, 인생 전반을 살아가기 위한 최초의 출발점이자 방향점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고사성어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을 충실하고 안정적으로 지내는 것은 인생에 더없이 큰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헐벗고 굶주리지 않게 보살피고 범죄나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보호할 뿐 아니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너무 일찍 끝나버리지 않도록 하는 노력 역시 기울여야 한다.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화학제품의 사용을 자제하고 이들의 유해성을 검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이를 위한 한 가지 행동일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고 버리는 화학제품 속에 든 환경호르몬이 아이들에게서 빛나는 어린 시절을 빼앗아가는 약탈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