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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창혁]조현오 파동의 뿌리

입력 | 2010-08-18 03:00:00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 본질은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발언이 과연 고위공직자, 특히 국가치안 책임자의 자리를 맡겨선 안 될 만큼 심각한 배제 사유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머리가 굵을 대로 굵은’ 경찰대 출신들이 그의 낙마를 노리고 동영상 자료를 흘렸다는 음모론은 그런 본질을 먼저 살펴본 다음에 규명해야 할 일이다. ‘조 청장 내정자는 경찰 내에 몇 안 되는 외무고시 출신이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출신만 됐어도 지금 같은 곤경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동정론도 마찬가지다. 물론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그런 추잡한 모리배들은 솎아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조 청장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역설(逆說)이 성립한다. 조직내부 사정(司正)이야말로 객관성과 공정성이 생명 아닌가.

실언보다 더 우려되는 권력의 행태

다시 본질로 돌아가 우선 조 청장 내정자의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을 들여다보자. 본인 해명처럼 ‘내부 강연’에서 인터넷과 주간지 보도를 인용한 것이라면 ‘무책임한 망발’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부적격 판정을 내리기엔 조금 주저하게 된다. 그가 강연 내내 진압부대 간부들에게 ‘절제된 물리력 행사’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주저하게 된다. 그는 “거듭 재삼 강조 말씀 드립니다”라며 그렇게 당부했다.

사자(死者), 특히 전직 국가원수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유족들과 야당의 비난은 당연한 반응이다. 비극적 죽음에 대한 국민의 특별한 정서를 생각하면 자진사퇴가 옳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사죄하면? 유족들과 야당은 사죄의 진정성을 믿지 않겠지만, 죄질의 정도는 좀 달라지는 것 아닐까? 경찰청장 부적격의 ‘절대사유’로 꼽기에는 좀 논란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문회가 열려 판단자료를 얻었으면 하고 기대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조현오 파동의 본질은 그 뿌리까지 파헤쳐 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 곁의 정부, 내 곁의 정의여야 할 경찰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 병근(病根)을 알 수 있다.

여권 핵심인사는 파동의 출발선이 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의 전격 사퇴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강 청장이 내년 3월까지 임기를 다 채운 뒤 새 청장을 임명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게 이명박(MB) 대통령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경찰 간부들이 ‘다음 경찰총수는 MB가 아닌 차기 대통령 당선자에게 발탁될 것’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경찰조직을 좀 더 확실히 장악할 필요가 있다.” 경찰을 정권 유지의 핵심수단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권력논리다.

DJ정부 ‘박금성 파동’ 닮아가

김대중(DJ) 정부 시절의 ‘박금성 파동’이 꼭 그랬다. 임기 중반을 넘어서자 동교동계는 레임덕을 걱정했고, 무슨 공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찰 장악에 조바심쳤다. 윤웅섭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차기 청장 0순위로 꼽혔으나 경기고 출신이었다. 결국 윤 서울청장을 포함해 청장 후보직급인 치안정감 4명을 동시 퇴진시키고 전남 영광 출신으로 목포고를 졸업한 박금성 경기청장을 서울청장으로 끌어올렸다. 모두 박에게 후반기 경찰을 맡기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고, 기준은 역시 충성이었다. 김원길 의원이 권노갑 최고위원에게 “(윤웅섭이) 경기고 출신이라도 맡기면 충성한다”고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엔 경북 포항 출신인 이강덕 부산경찰청장에게 ‘박금성의 역할’이 주어진 모양이다. 조 내정자를 임명해 시간을 번 다음 현재 치안감인 이 청장을 치안정감으로 승진시켜 MB 임기 말을 보위케 한다? 그럴듯하다. 그렇다면 MB 정권의 권노갑은 누구일까?

김창혁 교육복지부장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