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此의 此, 雖有此의 此는 모두 앞서 나온 기러기와 사슴을 말한다. 雖는 ‘비록 ∼라 하더라도’라는 뜻의 양보절을 이끈다. 有는 所有의 有다. 맹자는 賢者而後樂此라고 主旨를 긍정표현으로 말한 후 不賢者∼不樂也라는 이중부정의 어법으로 主旨를 다시 강조했다. 당시 제후는 동산과 정원을 만들고 琪花瑤草(기화요초)를 심고 珍禽奇獸(진금기수)를 기르면서 즐겼다. 맹자는 그 사실을 정당하다고 보지 않고, 어진 제후가 아니면 그런 것을 즐길 수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양혜왕의 주의를 끌었다.
조선후기의 李萬敷(이만부)는 경주를 유람한 후 ‘東都雜錄(동도잡록)’을 집필하여, 雁鴨池(안압지)와 鮑石亭(포석정)은 신라 때 燕宴荒樂(연연황락)하던 도구라고 했다. 燕宴은 태평스럽게 잔치하는 일, 荒樂은 안일에 빠짐을 말한다. 이만부는 신라의 태평시대를 트집 잡은 것이 아니라 신라 군주들이 仁義의 정치를 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이다. 荒樂을 경계한 뜻을 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