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이명박 대통령이 간 총리의 사죄담화를 ‘진일보한 노력’이라고 평가했다는데 참 다행이야.
오만: 단지 ‘일보’라고 하면 섭섭하지. 한두 번도 아니고, 도대체 몇 번을 더 사죄해야 만족할까.
겸손: 몇 번을 사과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과거에 그만큼 상처를 줬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말할 때까지 사과해야지.
오만: 너는 일본인으로서 자긍심도 없냐?
겸손: 사죄해놓고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치인들의 망언이 튀어나오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가니 진정성이 퇴색해버리는 거지.
쿨: 최근에는 주춤해졌잖아. 이번 담화를 계기로 미래를 향해 다시 시작해야지 않을까.
겸손: 사실 그렇지 않아? 아예 “무력으로 강제된 병합이고 당초부터 무효였다”라고 했으면 훨씬 깔끔했을 텐데….
“미안”vs“왜 또” 미묘한 감정 교차
오만: 그건 무리야. 당시는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대였어. 한국 병합은 세계도 인정했던 거잖아. 악법도 법이라고. 무효가 된 것은 패전 때문이지.
쿨: 이제 와서 다시 문제 삼기는 힘든 일이고 여하튼 담화에 “국가와 문화를 빼앗겼다”고 밝힌 것은 결국 ‘일본이 빼앗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어.
겸손: “좋은 일도 했다”는 것은 전형적인 망언이야. ‘만약 일본이 전후에 미국에 합병돼 저팬 주(州)가 됐다면…’이라는 예전의 아사히신문 사설이 생각나는군.
오만: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나라면 독립운동을 했을 거야.
쿨: 하하하. 마치 자네는 내셔널리스트 같군. 일본은 3·1 독립운동을 심하게 탄압했었지. 자네라면 어땠을 것 같아?
오만: 음….
겸손: 그렇게 말하고 보니 간 총리가 담화에 3·1 독립운동을 언급한 것은 참 잘했어.
쿨: 17년 전에 깨끗하게 사죄한 호소카와 전 총리는 “상대의 마음과 긍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내셔널리스트”라고 말했었지.
오만: 하지만 전후 한국은 일본인의 긍지에 상처 주는 일을 해왔잖아.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이름)를 점거해놓고 일본이 우리 땅임을 주장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마치 식민지 시대의 탄압 같지 않아? 게다가 호소카와 총리의 사죄를 획기적이라고 칭찬하고, 공동선언에서 화해까지 해놓고는 그 후에도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양국의 벽을 높이고 있잖아. 마치 뒤통수 때리듯 말이지.
쿨: 헐∼ 너무 자극적이군. 하지만 아무리 사과를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라고만 하면 가해자 쪽에서도 피해의식이 생길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 열심히 노력해서 성적을 올렸는데도 “고작 점수가 이 정도냐”고 엄마한테 꾸지람만 듣는다면 아이의 마음이 삐뚤어지는 것처럼….
오만: 나라면 아마 가출해 버렸을 거야.
쿨: 어쨌든 일본에도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만은 한국 국민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사과의 마음 한국인들 알아줬으면”
오만: 그런데 말이야. 최근에는 삼성 LG가 세계 TV와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일본 기업은 쇠락하기만 하는 것 같아서 참 한심해.
겸손: 예능계에서도 ‘한류’가 젊은층에게 널리 퍼져가고 한국 가요의 인기가 대단하잖아. 총리 담화에 이런 내용도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쿨: 나 같으면 담화에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눈부신 발전의 길을 걷고 있는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도 넣었을 거야.
오만: 음…. 나는 “한국은 이제 사죄 따위는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고 넣고 싶은데, 아마 뭇매질 당하겠지. 오늘 내가 한 말은 틀림없이 전부 삭제됐을 거야.
쿨: 하하하. 자네는 오만 씨가 아니라 피해망상 씨 같은데. (오늘 말한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나.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