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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활]‘먹튀’ CEO

입력 | 2010-08-19 03:00:00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 VK는 2006년 7월 자금난으로 부도를 맞았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 기업인으로 각광을 받았던 이철상 VK 사장은 “피해를 본 주주 임직원 협력회사 은행 등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면서 “회사의 조기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386 운동권 벤처 신화’의 주역이었던 그의 실패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2년 6개월 뒤인 지난해 1월 이 씨가 대전지검에 구속되면서 밝혀진 범죄 혐의는 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최종부도 석 달 전인 2006년 4월 경영상태를 숨기고 유상증자를 해 90억 원을 챙겼다. 2005년에는 허위로 연구소 이전 보조금을 신청해 18억여 원을 받았고, 위장거래 기업을 통해 13억 원을 횡령했다. 검찰은 이 씨가 회사에 끼친 손실액이 300억 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회사는 망해도 기업인은 잘산다’는 속설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됐던 것은 이 씨 같은 ‘먹튀’가 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경영 실패로 회사를 궁지에 몰아넣고도 거액을 챙기고 떠난 대표적 기업인 7명을 선정했다.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행크 매키넬은 역사상 최대 규모인 1억2200만 달러의 퇴직금과 7800만 달러의 추가 보상을 받았다. 합치면 23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GM의 릭 왜거너와 스타 여성 CEO였던 HP의 칼리 피오리나도 먹튀 CEO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1980년대 이후 확산된 시장 만능주의와 카지노 자본주의의 그늘을 되돌아보게 했다. 빈곤과 억압만을 낳는다는 사실이 판명된 사회주의가 대안일 수는 없지만 영미식(英美式) 자본주의의 한계도 드러났다. 단기 성과 지상주의와 ‘사람 자르기’에만 치중하면서 엄청난 봉급과 보너스, 스톡옵션, 퇴직금을 챙기는 일부 CEO의 행태는 용납하기 어렵다.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나 ‘절제된 시장경제’가 필요한 때다. 권력이나 돈, 명예처럼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여기기보다는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