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김종배 법무법인 ‘광장’ 고문

입력 | 2010-08-20 03:00:00

“카메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35년만의 자유를 렌즈에 담았다”
지난해 은퇴후 사진으로 제2인생…문경새재 등 방방곡곡 1000곳 찍어
“은퇴 후유증이요? 저 그런것 몰라요”




김종배 작 ‘파도’. 울산 울주. 2010

《사진은 제2인생의 동반자. 35년 만에 자유가 찾아왔다. 2009년 5월 직장생활이 정년으로 막을 내렸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이마에는 계급장처럼 굵다란 주름 하나가 새겨져 있다.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다짐하듯 되뇐다.
‘그래 이제부터 인생 2막 여행을 시작하는 거야.’ 카메라를 챙겨들고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간다. 어디로 가는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고? 이제는 자유니깐. 차를 몰아 낯선 곳에 세우고선 어색하게 느릿느릿 걸어 본다.
이제까지 무심히 지났던 풍경들이 새삼 처음 본 모습처럼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 교감의 순간, 오랜 세월에 걸친 인생 역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음속에는 평화만 남았다.》

사무실 한쪽에 걸려있는 자신의 전시회 포스터를 배경으로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한 김종배 고문.

2007년부터 지금까지 카메라와 함께 이런 여행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3년간의 여행을 통해 얻은 자연풍경 사진을 모아 올 초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 제목은 ‘아름다운 여행’전. 주인공은 작년까지 산업은행 부총재를 지내다 현재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을 맡고 있는 김종배 씨. 그는 사물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사진은 언제 배우셨나요.

“2005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관하는 10개월짜리 최고경영자(CEO) 과정에 입학했는데 특별 활동에 사진반이 있었어요. 카메라를 잡아 본 경험도 있어 공부하기 편하겠다 싶었죠. 직장 일로 사진 수업은 많이 듣지 못했지만 졸업사진전에는 반드시 사진을 출품해야 했어요. 당시 학교 사진반에 모인 분들은 열두세 분 정도였어요. 그분들과 졸업사진전을 마친 이후 연말을 앞두고 새해 달력도 만들고 내친김에 그룹사진전까지 하면서 결국 사진에 빠져들었죠. 사진전시회를 해보니 실력이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사진 심화과정과 삼성경제연구소가 주관하는 ‘포토 앤드 컬처’ 과정을 수강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사진에 대해서 눈을 좀 떴다 할까요?”

―언젠가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사진을 찍은 적도 있었다면서요.

“1980년 유럽 연수를 갔을 때 아주 운 좋게 런던을 중심으로 한 달 정도 배낭여행을 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장만했죠. 새 카메라인 데다 처음 보는 이국 풍경을 접하니 얼마나 열심히 찍었겠어요. 수십통은 됐죠. 그러나 황당했던 것은 귀국한 뒤 현상을 했는데 현상약 성분이 우리나라와 달랐기 때문인지 원래 색상이 나오지 않고 누렇게 나오는 겁니다. 아마도 현지에서 산 독일제 아그파 필름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 종류의 카메라를 갖고 계시나요.

“옛날에 유럽에서 사용한 기종은 미놀타 35mm 카메라였고 현재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는 캐논 5D mark2 입니다. 이 카메라의 풍부한 화소수와 부드러운 계조 표현이 맘에 들어요. 다른 DSLR에 비해 휴대성도 좋구요. 만족하며 사용하는데 최근 캐논 1D mark4가 나왔다기에 유심히 비교해 보는 중입니다.”

―풍경사진을 많이 찍으시는데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무엇보다 피사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육체는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사진 찍을 때 집중하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죠. 풍경을 찍기 위해선 많이 걸으니 다리 힘도 강해집니다. 은퇴 후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안 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 해질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기간을 사진으로 다 때웠습니다. 남들은 뭐 할 일이 없다 그런 소리를 하지만 무슨 소리냐 이거죠. 시간만 나면 카메라 메고 밖으로 나가버리는데 딴생각이 들 틈이 있나요. 은퇴하신 분들께 저는 무조건 카메라 사라고 해요. 카메라만 있으면 사진은 찍게 되어 있어요. 혹자는 사진을 한다면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하는데 노후까지 가져갈 수 있는 취미로 이 이상 가는 것이 없어요. 저는 가끔 골프도 치는데 오전 10시에 골프 약속을 하면 저는 새벽에 미리 나가서 근처에서 사진 찍다가 골프 치러 갑니다. 돌아올 때도 시간이 맞으면 차 세워 놓고 사진을 찍다가 옵니다. 어차피 사진은 아침하고 늦은 오후에 잘 나오잖아요.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죠.

덧붙이자면 사진은 혼자 다녀야 좋은 사진이 나와요. 노벨 문학상 탄 사람이 함께 글 써서 상 탄 게 아니잖아요?(웃음) 우르르 갈 때는 정보나 교환하고 술이나 한잔 마시고 그뿐이에요. 요새는 집사람이랑 자주 촬영을 나갑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내에게 소홀했던 부분을 보상하는 의미도 있고 맑은 공기 마시며 부부가 공통의 취미를 가지면 좋잖아요. 집사람하고 나하고 똑같은 위치에서 “야 저거 좋다” 하며 카메라 셔터를 같이 누르는데도 같은 사진이 안 나와요. 신기해요.”

―그동안 사진촬영차 대한민국 산하를 두루 다니신 것으로 압니다만….

“사진 데이터를 다 모아 보고 체크해 보니깐 대한민국 바다에 접한 3면은 거의 다 가 봤고 북쪽도 휴전선 일대를 다 다닌 것 같아요. 바닷가를 따라 난 찻길, 철길을 수없이 걸었고 사람이 사는 큰 섬은 물론 유명한 산과 계곡도 부지런히 다녔어요. 대략적인 방향만 정하고 주말이 되면 차 끌고서 현장에 도착해선 발길 닿는 대로 하루에 15∼20km씩 카메라 메고 걸었던 것 같습니다. 문경새재, 용추계곡 등 특정 지점으로 치면 1000곳이 넘을 겁니다.”

―풍경사진을 찍는 나름의 원칙이 있습니까.

“나 스스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째는 관광 엽서용 사진은 찍지 말자. 둘째는 캘린더에 나오는 사진과 똑같으면 좀 곤란하지 않느냐. 셋째는 남들이 봐서 어 이거 어디서 찍었네 하고 금세 알아차리면 풍경 자체의 신비감이나 신선함을 떨어뜨릴 것 같아요. 이 세 가지를 정한 것은 어차피 사진이라는 것이 나만의 시선으로 내가 바라보는 건데 그걸 좀 차별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예요. 내 사진 한다면서 남들이 찍은 사진 위주로 찍고 있다면 답답할 노릇이 아닌가요. 이번에 개인전을 한 번 했는데 ‘이 사진 다 어디서 찍었습니까?’ 라고 묻는 사람이 참 많았어요.”

―우리 강산에서 얻는 교훈도 있겠습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좋아요. 사진을 하기 전에는 제가 사물을 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세세하게 보게 되니까 같은 숲이라 해도 광선에 따라 정사면에 있는 숲하고 반대쪽 그늘진 곳에 있는 숲하곤 풍경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누군가 훼손한 바위나 누가 베어버린 한 그루의 나무가 풍경 속에 찍혀 있으면 이런 부분은 아무리 작아도 금방 표시가 나고 사진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인간 사회도 자연을 닮았으면 해요. 내가 좀 더 많이 가졌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좀 양보하고 배려했으면 해요. 나는 이런 조화로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요.”

―사진촬영을 다니면서 어려운 부분이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 사진은 내 눈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 표현이 주는 느낌처럼 평화로운 행위가 아니라 특정한 시간, 위치, 범위, 각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치열한 작업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의 사진작업은 ‘사진도 다른 매체와 같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만 사진이 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1998년부터 2000년 5월까지 주말마다 무박 2일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 국토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느끼면서도 사진을 찍어 두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길게 늘어선 백두대간의 첩첩산중의 모습은 여기저기 훼손된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겁니다.”

―사진기가 본인을 닮는다면서요.

“업무 등으로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마다 절실히 느끼는데 내가 좀 화가 났을 때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 안 뒤부터 가는 차 안에서부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클래식을 듣기도 합니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으면 좋은 사진, 맘에 드는 사진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 기계도 사람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고 마음이 찍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요즘 와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이 사진이라는 것이 결국은 내 마음을 가져다 찍는 것이구나’ 라고요.”

―얼마 전에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하셨죠.


“개인전을 하고 나서 보니깐 함부로 전시회를 여는 게 아닌 것 같다 싶어 초심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룹전이야 별 부담이 없었는데 아마추어지만 개인전은 조금 부담이 됩니다. 나 스스로 자기 사진틀 안에 갇혀버리는 느낌도 있고 다음번 전시엔 뭘 찍어야 할지 벌써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리 전시회를 준비하기보다는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맘에 드는 사진이 많아지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산업은행 부총재로 지난해 은퇴하셨습니다.


“경력이 너무나 단순하죠. 1974년도에 입사해 정확하게 35년 동안 한 직장에서 계속 생활한 거죠. 산업은행이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개발 금융기관인 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커가는 것을 지켜본 것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죠. 그사이에 외환위기도 겪었고요. 제가 태어난 해는 6·25사변 중이었고 그 뒤에 민주화 등 격변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온 거지요. 저는 짚신부터 최고급 신발까지 신어 본 세대가 된 겁니다.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을 겪은 인생이라고 봐야죠.”

―35년 직장 생활의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직장생활 초기엔 그 직장에 빠져야 성공 하겠죠. 그 코드는 호기심입니다. 제가 특별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호기심에 이끌려 35년 끝까지 와버렸어요. 사진도 호기심을 갖고 시작했으니까 인생 끝까지 이어 나가지 않을까요.”

김 고문은 젊은 시절부터 카메라를 잡았지만 당시는 여행 기록을 남기는 수준에 불과했다. 2005년 사진 교육을 받으면서 남다른 본인의 열정과 노력이 녹아들었고 그 결과 이제 그의 깔끔한 풍경사진을 보노라면 아마추어지만 고수의 느낌을 받는다. 그는 ‘아름다운 여행’을 통해 자연의 다양한 빛깔과 모양을 만났고 앞으로도 그 여정은 이어질 것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아직도 사회에서 그의 경륜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은퇴 전처럼 바쁘게 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와 함께 카메라를 메고 이리저리 숲길을 걸으며 행복한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