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美-이란과 동시협의… 전례없는 외교행보
동맹과 실리 사이 줄타기

20일 한국의 대(對)이란 제재 문제를 논의한 관계장관회의 직후 정부 고위관계자가 회의 결과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유럽연합(EU) 수준의 포괄적이고 강력한 대이란 제재를 해 달라”는 미국과 “한국이 미국 요구대로 독자 제재를 하면 보복하겠다”는 이란 사이에 끼여 관련 공무원들에게 ‘함구령’까지 내려가며 대응방안을 찾아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방안이 ‘두 나라와 동시에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이란에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최선의 대안’임을 설명하고 미국에는 ‘한국이 성의를 보였다’는 점을 설득하는 전례 없는 외줄타기 외교를 시작하는 셈이다.
미국은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란 제재 결의안→7월 1일 이란 제재 법안 발표→8월 1∼3일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의 방한→16일(미국 시간) 이란 제재 법안의 시행세칙 발표 등으로 국제사회와 한국의 이란 제재 동참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이란 측은 ‘정상적인 거래만 해 온 이 지점에 대해 한국이 내리는 조치는 미국에 동조한 추가 독자 제재로 인식하겠다’며 경제적 보복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지금까지 “제재 수위 등이 결정된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 주변에서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이 있겠느냐. 다만 그 결과를 미국과 이란에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 것인지가 고민거리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는 ‘한국이 이 지점을 제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란에는 ‘그것이 독자 제재가 아니라 국내법 위반에 따른 것’임을 역설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이런 ‘외줄타기’ 같은 외교적 노력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이란과 ‘협의’한다고 하면 이란의 핵 확산 가능성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해 온 미국 처지에서는 ‘한국이 범죄자(이란)와 무슨 얘기를 한다는 것이냐’는 불필요한 의구심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집권 초기 이란과의 대화를 시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본격적인 이란 제재 준비에 착수했다. 미국 의회가 이란 제재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그보다도 더 먼저라고 외교전문가들은 말한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