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어선 차량 속에 있다 보면 기다림에 지쳐서 속이 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멕시코 친구 대부분은 화를 내거나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운 표정까지 보이면서 기다린다. 멕시코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조언을 했다. 기다리는 시간을 피할 수 없다면 재미있게 활용하는 것이 기다림에 지쳐서 애를 태우는 일보다 효율적이라는 대답이다.
이같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문화는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다. 5년 전 스페인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스페인 친구 한 명과 집 근처로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은 상영관이 25개 있는 복합 상영관으로, 차량을 동시에 4000대 이상 세울 수 있는 초대형 극장이었다. 영화 시작 2시간 전쯤 영화관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영화관과 가까운 곳이 아닌 외곽 주차장만 문을 열어놓았다. 걸어서 영화관까지 10분간 걸어야 할 정도로 먼 거리였다. 함께 만난 스페인 친구에게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여긴 원래 그렇게 하는데 뭐가 이상하지?” 왜 가까이 있는 주차장은 열어 두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참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곳은 급한 사람이 사용하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처럼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된 사람은 이런 문화를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여유가 더 합리적이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매일같이 국경에서 ‘검문과의 전쟁’을 하다 보니 이곳 사람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외국어 공부를 할까, 전화로 친구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여유와 지혜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강노상 LG전자 멕시코법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