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우선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의 조부모들은 자급자족적 국가경제의 세계에 살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증조부모들은 우리처럼 국제적인 무역과 투자의 세계에 살았다. 물론 그 세계는 민족주의에 의해 다시 파괴되고 말았지만….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세계경제를 이렇게 묘사했다. “런던 시민은 침대에서 아침 차를 마시면서 전 세계의 상품을 전화로 주문할 수 있고 동시에 세계 어느 곳에라도 자신의 재산을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세계는 전쟁 혁명 공황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 세계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분할됐다. 그 분할된 세계를 다시 합치는 데 두 세대가 걸렸다. 이 모든 것이 또다시 무너질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자급자족은 시대착오적이고 식량공급은 세계시장에 의존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러나 밀 쌀 옥수수 가격이 치솟으면서 케인스가 언급한 금지와 배제의 정치가 돌아왔다. 많은 국가가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제 군사주의와 제국주의가 올 차례다. 조지아 전쟁은 그 자체로는 큰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전쟁은 미국이 군사력의 독점권을 지닌 팍스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의미하고 세계화의 미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이 지금 매우 위태롭다.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보다 더 위태롭다는 얘기도 있다. 러시아는 2006년 우크라이나에 가스공급을 중단해 가스를 무기로 사용한 바 있다. 러시아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일부 분석가는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세계 경제통합은 그 자체로 우리를 전쟁에서 보호할 것이다. 잘나가고 있는 무역국가들이 군사적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번영을 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의 경제는 첫 번째 시대보다 더 확고한가. 어떤 점에서는 그렇다. 예를 들어 서구국가 간 전쟁은 경제적 유대뿐만 아니라 민주적 가치의 공유 때문에라도 더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 주요 경제국을 포함한 더 많은 국가는 이런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자유로운 교역이 이익이 되는 한 교역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안전한 가정이 아니다.
에인절은 군사적 정복이 이익이 된다는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 점에서 옳았다. 그러나 경제적 합리성이 전쟁을 예방할 것이라는 믿음도 똑같이 환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서로 의존하는 정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