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피플Q|설경구의 영화와 삶] 설경구 “제목이 촌스럽게 ‘해결사’…대본도 안 읽었죠”

입력 | 2010-08-26 07:00:00

‘해결사’로 돌아온 설경구. 1000만 관객 돌파 영화를 두 편이나 보유했는데도 그는 “흥행처럼 어려운 걸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냐”며 영화 선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뒀다


■ ‘해결사’ 된 설경구, 처음엔 시나리오 받고 팽개쳐 놓았다고…왜?

70년대도 아니고…시나리오 받자마자 치워놓아
한참 후 첫 장 읽다 “유쾌 상쾌 통쾌” 단숨에 완독

난 충무로 행운아!…오디션 한번 안보고 주인공만
실제로도 해결사?…허허∼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제목이 촌스럽잖아요.”

설경구는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때 수식어를 거의 동원하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을 즐겨 쓴다. 그의 새 영화 ‘해결사’(감독 권혁재·제작 외유내강) 시나리오를 받고 선뜻 첫 장을 넘기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제목 탓이라고 했다. 영화 제목을 두고 그는 “60년대 액션영화 같다”며 “왠지 흰 장갑을 낀 주인공이 등장할 것만 같지 않느냐”고 유쾌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이런 주저 끝에 막상 시나리오를 들자 상황은 바뀌었다. 그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빨리 읽은 시나리오도, 이렇게 빠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해결사’로 돌아온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영화에서 그는 흥신소를 하며 살아가는 전직 형사 강태식을 맡았다. 영화 내내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쫓고 쫓기는 질주를 벌인다. 설경구는 이 영화에서도 몸을 많이 썼다. “액션영화도 아닌데 액션하다 왼쪽 가슴 근육이 파열됐다”며 “아주 난장을 부렸다”고 했다. 그만큼 영화에 푹 빠졌다.

- ‘해결사’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영화 ‘해운대’를 촬영하며 부산에 있었는데, 부산국제영화제 때에 맞춰 류승완 감독이 자기가 썼다면서 ‘해결사’의 시나리오를 갖고 왔다. 받아놓고 빨리 읽지 않았다. 촬영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핑계였다. 시나리오 표지의 영화 제목이 직설적이고 촌스러워서 선뜻 못 읽었다. 그러나 첫 장을 시작하자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렇게 속도가 빠른 영화는 처음이다.”

- 액션 장면이 많았다. 예고편 자동차 액션 장면이 특히 화제다.

“처음에는 분명 액션영화가 아니었는데 찍다 보니 액션의 강도가 세졌다. 하하! 자동차 추격 장면은 5일 동안 대전시청 앞에서 찍었다. 차만 20대가 나왔고 차 위로 떨어지는 모습도 수십 곳에서 번갈아 찍었다. 요즘은 HD카메라로 찍고 현장에서 바로 편집한다. 몇 배로 연기한다. 아! 정말 힘들었다.”

- 멜로 빼고 모든 장르가 다 들어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인데.

“한 마디로 유쾌 상쾌 통쾌한 영화다. 계산할 필요 없다. 음모가 있지만 코미디도 짙다. 추석에 맞춰 개봉하니까 ‘한가위만 같아라’와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하! 조연들도 대단하다. 솔직히 오달수가 형사반장으로 나오는 데 얼마나 재미있나. 송새벽은 더듬는 말투로 진지하게 연기한다. 이 영화로 무슨 메시지를 주겠다? 그런 것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 만든 영화인데,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면 된다.”

- 지난해 ‘해운대’부터 올해 1월 ‘용서는 없다’ 그리고 8개월 만에 또 새 영화다. 너무 욕심이 많은 건 아닌지.

“아닌데, 오히려 전보다 줄었다. 1년에 한 편 개봉, 한 편 촬영이 딱 좋다. 뭐 그러다가 좋은 작품 있으면 더 하는 거고.”

- 그동안 출연한 영화 중 1000만 관객을 넘은 작품이 ‘실미도’, ‘해운대’ 두 편이다. 흥행에 ‘감’이 생겼나.

“그 어려운 영화 흥행을 내가 어떻게 알까. 하하! 모른다. 시나리오를 봐도, 영화를 봐도 정말 모른다. ‘실미도’ 때는 ‘내일 신문 보라’는 강우석 감독 전화를 받고서야 내 출연 사실을 알았다. ‘해운대’ 때도 윤제균 감독이 ‘둘이 술 한 잔 하자’고 하길래 만나서 진탕 술마시며 부둥켜 안고 울었다. 운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출연하게 됐다. 다 인연이다. 망한 것도 흥한 것도 다 인연 아닐까.”

- 계획을 세워 일하는 편이 아닌 모양이다.

“단순하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계획을 어떻게 세우겠나.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되는 게 얼마나 될까. 나는 수동적인 인간이다. 정적인 인간인 것 같다. 4박5일 동안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올 때도 있다.”

“굳이 계획을 세워 그대로 살아오지 않았다”는 설경구의 말을 듣다 대뜸 “그럼 운을 타고 난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망설이지 않고 “운? 죽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기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직접 나서 오디션에 응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출세작인 영화 ‘박하사탕’ 때도 이창동 감독의 요청으로 만나 주인공을 차지했다. 그러고 보면 행운도 실력이다.

“딱 한 번 스스로 오디션에 서류를 냈던 적은 있다. 대학 4학년 때 MBC 탤런트 공채에 지원했다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연극영화과 학생들은 웬만하면 1차는 넘어간다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후배들 보기 민망해 혼났다.”

- 영화 제목에 빗대 누군가에게 ‘해결사’였던 적이 있었나.

“허 참. 내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누구 일을 해결하겠나.”

- 그렇다면 ‘내 인생의 해결사’는 있나.

“하하! 각자 해결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나는 안 믿는다.”


■ 설경구는 누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1998년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스크린 데뷔. 이 영화를 본 이창동 감독의 눈에 띄어 2000년 ‘박하사탕’에 출연. 첫 주연작인 ‘박하사탕’으로 제21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 이후 시대극, 코미디, 멜로,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을 맡음. 2002년 ‘공공의 적’과 ‘오아시스’를 통해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실미도’, ‘역도산’, ‘열혈남아’, ‘그놈 목소리’, ‘해운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