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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편지/윤상철]안경만 있어도 빈곤 악순환 끊을텐데

입력 | 2010-08-26 03:00:00


나는 매일 안과 질환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치료하는 안과의사이다. 하지만 내 눈은 근시라서 한시라도 안경을 빼놓고는 살 수가 없다. 예전부터 “선생님은 왜 라식 안 하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바쁜 전공의 시절에는 시간이 없어 꿈도 못 꾸었다. 후에는 에티오피아로 파견되었기에 기회가 없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손을 더듬어 안경을 찾는다.

내 몸의 일부가 된 안경을 처음 쓴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신학기 시작과 함께 시행한 시력검사에서 두 눈 모두 0.3으로 나왔다. 시력교정이 필요하다고 써 있는 가정통지문을 들고 집에 간 뒤 엄마 손에 이끌려 안과에서 검사를 받고 생애 첫 안경을 쓰게 되었다. 그 후로 매 학기 시력검사를 통해 내 시력을 알게 되었다. 정보습득 대부분을 시력에 의존하는 인간의 특성상 저하된 시력을 계속 방치했다면 학업 수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얼마 전 이곳 초등학교에 건강검진을 나갔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건립한 학교로 6·25전쟁 참전용사촌에 있어서 용사촌 초등학교라 불린다. 건강검진 중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칠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한 학생이 있었는데 기간을 물어보니 3년 전부터 그랬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옆 친구의 노트를 보며 수업을 따라갔으나 점차 수업에 흥미를 잃어 지금은 수업시간에 그냥 앉아만 있는다고 했다. 검사를 해보니 중등도 근시였다.

한국처럼 신학기마다 시력검사를 통해 적절한 안경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이 아이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양호실을 방문한 모든 학생의 시력을 검사했고 안경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안경처방전을 적어 주었다.

하지만 내가 쓴 안경처방전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학교를 재차 방문하였을 때 나의 안경처방전으로 안경을 구입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할 때 현지 안경 값이 부담하기 어려운 큰 금액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안경처방전을 모두 본인의 동전지갑 또는 필통에 잘 보관하고 있었다. 눈이 나쁘다 보니 여전히 수업과는 동떨어진 학생으로 남아 있었다.

좋은 시력을 가진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학업성취도가 높음은 이미 여러 연구에 의해 증명되었다. 에티오피아 학생에게 교육은 가난의 악순환을 끊을 유일한 희망이다. 이들이 좋은 시력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은 그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주는 것이며 이 나라 발전에 초석을 쌓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력검사부터 안경 제공, 학업성취도 관리까지 포함된 안경 보급 사업을 계획하였다.

시작 단계에서는 안경 제작기기 구입, 헌 안경테 모으기, 렌즈 구입이 필요하다. 한 학교에서 시작된 안경 보급 사업이 점차 주변 학교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된다면 사회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3년간 수업에서 소외되었던 학생이 한국인의 손길로 만든 안경을 통해 에티오피아를 이끌 재목으로 성장하는 극적인 드라마를 지금도 꿈꾸어 본다. 에티오피아 어린이를 위한 안경 지원 사업에 관심이 있거나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e메일(littleluke22@gmail.com)로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

윤상철 KOICA 에티오피아 사무소 협력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