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하지만 강렬한… 묵직하지만 재빠른…
《 ‘어떻게 하면 대중 브랜드가 명품을 만들 수 있을까.’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드레스덴의 페이튼 전용 생산 공장까지 ‘신형 페이튼’(사진)을 타고 312km를 달리면서 그런 생각이 내내 들었다. 여러 제품 중에서도 자동차, 그것도 크고 비싼 차의 고객은 극히 보수적인 성향의 소비자들이며, 신형 페이튼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회사가 위의 질문에 10년 가까이 고민해 내놓은 답안이다.》
○ 어떻게 명품이 될 것인가
에쿠스가 현대차 엠블럼이 아닌 독자 로고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신형 페이튼은 앞뒤로 폴크스바겐의 VW 로고를 큼지막하게 달았다. ‘우리는 폴크스바겐이고 폴크스바겐 이름으로 명품을 만들겠다’는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차 뒤의 로고를 누르면 트렁크가 소리 없이 열린다. 4.2 롱 휠베이스 모델에서는 전면부 로고에 레이더 센서가 달려 있어 앞차와의 거리를 측정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 “핵심과 기본기로 승부하겠다”
내부 인테리어와 주행 성능을 경험하면서 폴크스바겐이 선택한 길이 사실은 단순한 것임을 알게 됐다. 반짝 마케팅이나 깜짝 옵션 등 주변적인 것으로 눈을 현혹하지 않고 핵심과 기본기로 묵묵히 성실하게, 명품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5년이고 10년이고 가겠다는 거다. 준대형, 대형 세단 시장에서 다른 자동차회사들이 ‘이 가격에 이렇게 많은 옵션’을 강조할 때 페이튼은 기능장급 직원이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바느질을 해 재봉선을 최고급 핸드백 수준으로 딱 맞추는 데 공을 들이는 식이다.
달리기 성능에서도 호화로움을 뽐내기보다는 그 ‘질’을 생각하는 느낌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처음에는 묵직한 느낌이지만 속도를 낼수록 주행감이 살아나며 5m가 넘는 길이인데도 빼어난 코너워크를 보인다. 아우토반에서 시속 220km까지 속도를 내도 흔들림이나 소음 없이 안정된 모습이 퍽 믿음직스러웠다. 최고 출력은 240마력, 최대 토크는 51kg·m이며, L당 9.9km인 연료소비효율(연비) 덕에 서울∼대구 구간에 가까운 거리를 달렸음에도 연료 게이지는 절반밖에 줄지 않았다. 다만 기사를 두고 뒷좌석에 앉아서 타고 가는 용도로는 3.0 모델을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승차감에는 불만이 없지만 18개 방향으로 조절되는 개별 시트가 앞좌석에만 적용되는 등 뒷좌석용 편의사양은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볼프스부르크·드레스덴=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