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만에 자연습지 복원,美볼사치카 생태보전지역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서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헌팅턴비치에 위치한 볼사치카 습지는 유전 개발로 생태계가 파괴된 지 107년 만인 2006년 옛 모습을 되찾았다.백로가 습지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왼쪽 사진). 해안가에 알을 낳는 새들의 서식처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오른쪽 사진).
환경단체에서 28년째 활동하고 있는 빅터 라이프치히교수는 “습지를 복원한 뒤에도 습지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도로 건너편, 비치에서 불과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볼사치카 생태 보전지역(Bolsa Chica Ecological Reserve)’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철새들이 한가롭게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습지의 재발견’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세계 습지 복원의 대명사로 불리는 볼사치카 습지를 찾아 인간과 습지의 공존 방법을 찾아봤다.
○ 어렵게 되찾은 111년 전의 모습
안내를 맡은 빅터 라이프치히 골덴웨스트대 교수가 설명했다. 볼사치카 습지는 1899년 오리사냥클럽이 오리를 많이 잡기 위해 바다로 통하는 길목을 둑으로 막으면서 원래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1920년부터는 석유회사들이 습지를 사들여 대규모 유전을 개발하면서 생태계 파괴가 더욱 심해졌다. 라이프치히 교수는 “185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 주 해안 습지의 90%가 사라졌다”면서 “볼사치카 습지도 1940년 이후 66년간 ‘기름 땅’이었다”고 말했다.
유전개발로 생태계 파괴 심해지자 환경단체 ‘습지복원’ 30년 지속 홍보
볼사치카 습지가 제 모습을 찾은 건 2006년이다. 2004년 공사가 시작된 지 3년 만에 습지 전체 면적(약 6.5km²) 중 3분의 1가량인 2.4km²가 복원됐다. 가장 큰 변화는 둑을 허물어 예전처럼 바닷물이 들고 나는 습지가 됐다는 점이다. 헌팅턴비치의 바닷물이 볼사치카 습지 깊숙이 들어온다. 라이프치히 교수는 “습지를 복원하는 데 총 1억4800만 달러(약 1759억 원)가 들었다”면서 “2006년 8월 24일(현지 시간) 오전 6시 바닷길을 막고 있던 마지막 둑이 허물어질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습지 한쪽에선 여전히 유전 개발 중
습지가 제 모습을 찾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곳은 ‘볼사치카의 친구들(Amigo de Bolsa Chica)’이라는 비영리 환경단체다. 1976년 설립된 볼사치카의 친구들은 캘리포니아 주 최대 환경단체로 꼽힌다. 라이프치히 교수도 1982년부터 이 단체 회원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1995년 습지가 속한 헌팅턴비치 시장을 지냈다. 라이프치히 교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습지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주정부를 상대로 습지 복원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며 “1989년에는 습지 일대를 주택가로 개발하려던 주정부의 계획을 10분의 1로 축소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볼사치카 습지 복원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습지 한쪽 약 1km²에 이르는 지역에선 여전히 기름을 퍼 올리고 있다. 볼사치카의 친구들은 언젠가는 이 지역도 습지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라이프치히 교수는 “매년 수질을 검사하고 생태계를 조사하며 복원된 볼사치카 습지를 보전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면서 “이런 노력들이 습지 전역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멸종위기 새들의 보금자리 만들어
볼사치카 습지는 복원 4년 만에 서서히 예전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2007년 19종에 불과했던 어류는 2008년과 2009년 각각 42종과 46종으로 늘었다. 해안가에 자라는 거머리말은 2007년 약 3600m²에서 2009년 약 13만 m²로 서식지가 대폭 넓어졌다. 한 해 동안 이곳을 찾는 새만 200여 종에 이른다.
낚시-조깅금지 등 사람 영향 최소화, 제비갈매기-흰물떼새 속속 찾아와
철조망 안쪽 모래사장에서는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무리의 흰물떼새도 눈에 띄었다. 이들 역시 멸종위기종이다. 라이프치히 교수는 “흰물떼새는 모래사장에 둥지를 튼다”면서 “개체수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복원 뒤에도 볼사치카 습지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습지 곳곳에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사람들은 정해진 길로만 다닐 수 있고,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습지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행동만 할 수 있다. 낚시나 자전거 타기, 조깅은 물론이고 개를 데려오는 일도 법으로 금지돼 있다. 라이프치히 교수는 “습지를 복원하더라도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현재로선 생태계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인간이 먼저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헌팅턴비치)=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