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섭씨 ‘백의 금물, 색의 착용’ 경고문 입수1938년 발행… 일상생활까지 노골적 통제 입증
애국지사 후손 심정섭 씨는 27일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면서 “일반인은 물론 상(喪)을 당한 사람들까지 흰옷(백의) 입는 것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공개했 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가 전쟁 강제동원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민족의 상징인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한 민족 말살정책을 자행했음을 뒷받침하는 경고문이 27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가로 25.2cm, 세로 18cm 크기의 전단인 이 경고문에서 일제는 흰옷 대신 염색을 한 옷을 입고 다녀야 하며, 대상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상을 당한 사람들이 상가를 벗어날 때는 흰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고 그 대신 상을 당했다는 표시를 부착하라는 황당한 명령이 적혀 있다.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이자, 구한말 의병 주촌 심의선 선생의 증손자인 심정섭 씨(67·광주 북구 매곡동)는 이날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동아일보에 이 경고문을 공개했다. 1959년 고교 1학년 시절부터 50년이 넘게 독립운동이나 친일행위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온 심 씨는 올 3월경 대전의 한 고물상에서 이 경고문을 입수했다.
조선총독부는 중-일 전쟁을 일으킨 뒤인 1937년 12월경 “조선인들이 흰옷을 입고 음력설을 쇠는 것을 없애라”고 전국 행정기관에 지시했다. 이 경고문은 각 행정기관이 치밀하게 흰옷 착용금지 정책을 강요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다. 일제는 흰옷 착용금지 강요 이후 신사참배나 창씨개명 등 각종 민족 말살정책을 더 노골화했다. 조범래 독립기념관 학예실장은 “이 경고문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며 “일제가 전쟁 강제동원 준비를 본격화하면서 생활 속 민족문화까지 말살하려 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심정섭 씨가 공개한 흰옷(백의) 착용 금지경고문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38년 제작한 것이다. 경고문 발행기관에는 행정기관과 친일어용단체는 물론 면단위 조직까지 참가해 치밀했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