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正-公-法’으로 개각 꾸짖다… 李대통령, 사의 수용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알게 된 시점 등을 놓고 거짓말 의혹이 제기됐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29일 자신의 개인사무실로 써온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신뢰가 없으면 총리직에 임명돼도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내정 2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역시 청문회를 통해 위장전입 문제 등으로 코너에 몰렸던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쪽방촌 투기 논란이 일었던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도 사의를 밝혔다.
김 후보자는 27일 밤 서울 시내 모처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만나 “이명박 정부의 ‘공정한 사회’ 추구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거취 문제를 언급했고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의 뜻과 정치권 및 일반 국민의 여론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김 후보자의 사의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낙마 파동은 많은 국민이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 위법 여부뿐만 아니라 정직, 공정, 정의, 특권의식 여부, 생활태도 등 ‘무형(無形)의 가치’에도 엄정한 기준을 들이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특히 이 대통령이 핵심 가치로 제시했던 ‘공정한 사회’가 역설적으로 현 정부에 ‘부메랑’이 된 측면도 있다. 공정한 사회, 친(親)서민 등의 가치가 일반 국민의 높아진 도덕 기준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8·8개각 청문회 과정에서 처음으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송구합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오피스텔 로비에서 “저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뒤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 대통령이나 청와대 사정보다는 여론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법적인 합당 절차만 남은 미래희망연대 소속 의원까지 합쳐 180석을 갖고 있었지만 총리 임명동의안 표결 강행 등에는 ‘거수기 노릇은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기류가 대세였다.
이번 파동은 우리 사회의 한층 업그레이드된 눈높이가 정착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는 향후 각종 인사는 물론이고 사회질서 확립에도 중요한 원칙과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