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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신재민-이재훈 후보자 사퇴]포커스②: 본인외 주변관리도 엄격한 잣대로

입력 | 2010-08-30 03:00:00

“집사람이 한 일… 딸 때문에…” 변명은 더이상 안 통했다




“본인들이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인사검증의 잣대가 높아진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29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두 후보자를 결정적으로 낙마시킨 문제가 본인보다 부인과 자식 등 주변 가족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가리킨 것이다.

이날 자진 사퇴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부인이 들고 다닌 ‘명품 백’ 사진이 공개돼 더욱 어려운 형편에 처했던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고위공직 후보자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 등 주변의 관리까지 엄격히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됐다.

예전 같은 국회 인사청문회 분위기였으면 후보자들이 자신과 무관하게 부인 등 가족이 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얼마든지 버틸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결국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엔 공직 후보자들의 부인이 ‘노후를 위해’ 또는 ‘재테크 차원’이라는 명분으로 각종 의혹에 연루된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후보자들의 진퇴를 가를 만한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의 눈높이는 확연히 달라졌다. 신, 이 후보자는 한나라당이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를 통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관 적합도’ 조사에서 여러 후보자 중 부적합 지수가 가장 높게 나왔다.

○ 잇단 의혹에 무너진 신재민 후보자

야당은 신 후보자에 대해 ‘비리 백화점’이라고 공세를 폈다.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제기된 의혹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다섯 차례에 걸친 주소지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선 일단 시인했다. 그는 “큰딸이 목동에서 일산으로 이사한 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정말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정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 사정을 설명했지만 ‘위장전입 5회’의 파장은 컸다.

그의 부인이 각종 의혹에 연루된 것도 논란을 키웠다. 부인은 신 후보자의 친구가 대표로 있는 기업체의 비상임 감사로 등재되는 등 두 차례 위장취업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투기라는 의심을 받은 경기 양평 땅도 부인 명의로 구입한 것이다.

여권 내부에선 “잦은 위장전입으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했지만 결정적인 위법 사실이 없지 않느냐”고 신 후보자를 옹호하는 기류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후보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의혹이 제기돼 더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신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앞으로는 공직 검증 과정에서 배우자 등 가족의 경제활동에 대해서도 엄격한 도덕적 기준에 따라 위법 및 흠결 등을 검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쪽방촌’에 걸린 이재훈 후보자

이 후보자는 부인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 뉴타운 예정 지역의 ‘쪽방촌’에 있는 건물 일부 지분을 매입한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드러나 결국 낙마했다. 야당 의원들이 “투기 아니냐”고 몰아붙이자 “집사람이 아마 친구들하고 같이 노후 대비용으로 그렇게 한 걸로 안다. 경위야 어찌됐든 집사람이 한 것이지만 제 부덕의 소치”라고 거듭 사과했으나 돌아선 여론을 설득하지 못했다.

매입 과정에서 불법이 없었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인 친서민 정책을 펴야 할 지경부 장관 후보자가 ‘쪽방촌’ 투기 의혹에 연루됐다는 부정적 여론만으로도 문제가 됐다. 정치권에선 이 후보자가 야권이 주장한 ‘쪽방촌’ 프레임의 덫에 걸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는 문제의 부동산 지분을 기부하는 방안까지 제시하며 여론을 달래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정치권이나 공직사회에선 이 후보자에 대한 동정론도 없지 않았다. 부인의 부동산 매입을 이 후보자가 잘 몰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가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전문성과 자질을 인정받았고 호남 출신으로 지역 대표성까지 갖춰 민주당 일각에서도 그를 호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장점도 이 후보자의 결정적 흠결 하나를 덮지 못한 셈이다.

부산대 김용철 교수(정치학)는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들이 고위공직 후보자에게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정책적 소신을 갖고 있느냐’보다는 ‘어떻게 살아왔느냐’라는 점임이 다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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