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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신재민-이재훈 후보자 사퇴]포커스③: 위법 넘어 ‘무형의 가치’로 넓어진 잣대

입력 | 2010-08-30 03:00:00

‘말바꾸기 릴레이’에 여론도 여당도 등돌렸다




“할말 없습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개인 사무실로 써온 서울 종로구 내수동 오피스텔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오피스텔 로비를 빠져나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근 40년 만에 탄생한 40대 총리 후보자를 지명 21일 만에 낙마시킨 것은 눈에 드러난 위법행위가 아니었다.

청문회 과정에서의 잦은 말 바꾸기, 부인이 관용차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 등 과거의 잣대로 보면 ‘쯧쯧’하며 혀 한번 차고 넘어가줬을 ‘무형(無形)의 가치’와 관련한 문제들이 차기 대선주자 후보감으로까지 거론되며 혜성처럼 떠올랐던 김태호 후보자를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 했다.

공직자의 정직한 말, 공사(公私) 구분 같은 품성의 영역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느덧 선진국 수준의 눈높이를 요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당초 그는 무난하게 청문회란 시험대를 통과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이 있었지만 이미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안이었다. 재선 도백(道伯)을 거치면서 검증이 됐을 것이란 관측도 지배적이었다. 10명의 청문 대상 중 재산 신고액이 가장 적은 사람도 김 후보자였다. 그래서 청문회는 오히려 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13일 국회에 최근 5년간 소득공제 내용 등 인사청문자료가 제출되면서부터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3년여 동안 재산이 3억 원이나 늘어난 반면 ‘씀씀이’는 비상식적일 정도로 적었다. 제출한 자료로는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가 155만 원밖에 되지 않는 셈이어서 ‘스폰서’ 의혹이 불거졌다.

‘세대교체의 상징’이란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은 부인의 관용차 사용 의혹이었다. 지사 재임 시절 도(道)의 예산으로 부인용 차량(SM7)을 구입한 사실이 동아일보 보도로 밝혀지고, 도청 직원을 사택 가사도우미로 활용했다는 게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추적 끝에 확인됐다.

▶본보 20일자, 23일자 A1면 참조
김태호 지사때 道예산으로 부인 車구입


결정타는 24, 25일 이틀간의 청문회에서의 말 바꾸기였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첫 만남이 2007년이라는 그의 국회 서면답변 자료는 진작부터 신뢰성을 의심받았다.

▶본보 24일자 A4면 참조
‘박연차 첫 만남’ 시점 공방…金“2007년 이후” 野“이전부터 친분”


그는 청문회 초반엔 처음 만난 시점에 대해 “2007년 이후”라고 일관했다. 그러나 25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2006년 10월 3일 경남 김해 박 전 회장 소유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며 매섭게 추궁하자 “인정한다”고 말을 바꿔 위증 논란에 휘말려 버렸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의 거액 수수 의혹, 스폰서 의혹 등 정작 비리 관련 의혹은 어느 하나도 명확히 진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청문회에서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은 “억울하다”는 그의 해명에 공감하는 사람들마저도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위증 논란’의 심각성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김대중 정부 때 낙마했던 총리 후보들에 비하면 심각한 흠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거짓말 파문’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과거와 달랐고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도 이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지도부는 “법대로 인준투표”를 외쳤지만 27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걸레 같은 행주로 테이블을 닦으면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다시는 그 식당에 가고 싶지 않다”(유정현 의원)는 등의 거친 말까지 쏟아지면서 ‘사퇴 불가피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여당 지도부는 의원총회 내용을 즉시 대통령정무수석실에 전달했다. 친이(친이명박)계 소장파 의원들은 전화통화와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김태호로는 안 된다’는 기류를 확산시켜 나갔다.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는 소문도 나왔다.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도 의원들과 접촉하며 당내 기류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청문회 후 당과 청와대가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부적격’ 의견이 우세하게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오전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 반대 여론이 높았던 점도 교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도 27일 오후부터 진퇴를 심각히 고민하며 마음을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밤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모처에서 만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며 사실상 사퇴의사를 밝혔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0년 6월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국회 인준 표결 전에 낙마한 것은 김 후보자가 처음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장대환 후보자는 인준 표결에서 부결됐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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