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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닥터]보유종목 30개 이상? 원칙 없는 분산투자일 뿐

입력 | 2010-08-31 03:00:00


5월경 지점의 한 자산관리자로부터 주식투자를 많이 하는 고객이 요청하니 꼭 한번 만나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분의 불만은 ‘내재가치가 좋다는 종목들만 골라서 장기투자를 했는데 요즘 수익률은 종합주가지수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포트폴리오를 받아 보고 ‘아뿔싸’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대부분이 은행주와 보험주, 중소형가치주로 채워져 있고 보유종목 수도 30개를 상회하고 있어 현재 시장 상황에서 초과수익을 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한 구조였다. 만일 투자의 대가인 워런 버핏이 30개나 되는 투자종목을 보았다면 “원칙이 없는 분산투자는 보유 종목에 대한 확신이 없는 투자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일갈했을지도 모르겠다. 종목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이 좋고 가격이 많이 하락했으면 뭐 하겠는가. 투자자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이 높은 가격에 사주지 않는 한 주가는 올라가지 않는다.

필자는 그 고객에게 은행주와 일부 자동차 종목은 계속 보유하되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뉴스가 기대되지 않는 종목들을 매도해 보유종목을 크게 줄일 것을 제안했다. 버핏이 강조하는 대로 주식 직접투자는 장기투자를 하더라도 ‘잘 아는 종목’에 투자해야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고객이 보유 중인 30여 종목을 다 잘 알고 있다고 보기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보유종목을 10개 내외로 줄인 후 매도금액은 당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던 자문형 랩 어카운트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이 고객은 업종 중 저평가된 가치주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은행·보험주를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다소 가격 부담이 있기는 하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랩 어카운트 종목을 편입해도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해 이를 권유했다. 랩 어카운트는 큰 제약조건 없이 자유로운 자산운용이 가능한 직접투자의 강점과 전문가가 운용하는 간접투자의 장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최근 거액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금융상품이다.

필자는 주식투자에서 ‘가치’보다 ‘추세와 인기도’를 더 중요하게 취급한다. 가격상승의 추세가 유지된다는 것은 시장의 인기도와 관심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시장투자자들의 관심은 온통 끝을 알 수 없는 일부 정보기술(IT) 기업의 실적 잔치와 투자 사이클을 견인하는 차세대 성장동력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장기 소외된 가치주 쪽에서 조금 좋은 뉴스가 나온들 열광하며 이를 사들이는 투자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다면 가치주를 보유하는 것도 대안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장 초과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가치주들을 수십 종목을 붙들고 있다가는 만족할 만한 수익률을 얻을 수 없다. 이 같은 성향의 투자자들에게는 가치보다 누구나 따라가고 싶어 하는 추세를 선택하는 편이 궁극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재경 삼성증권 투자컨설팅 팀장 jk1017.lee@samsung.com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