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엔 ‘장례비’ 같겠지만 통일세는 꼭 필요한 보험”
《 3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60년사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한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은 기적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60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사공일)가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교수,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비롯한 해외의 저명한 한국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국내에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한국경제의 핵심 성공 요인으로 중공업 중심의 산업육성과 수출 장려 정책 등을 들며 정부의 적절한 정책과 개입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고 특히 통일에 대한 대비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동아일보는 놀랜드 박사와 후카가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경제가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
“북한에서는 통일세를 자신들의 ‘장례비용’이라고 생각해 기분 나빠하고, 한국 내부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반발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통일세는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놀랜드 박사는 “북한이란 나라를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통일 역시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른다”며 “그러나 통일이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사건이라는 것은 분명한 만큼 통일세는 적절한 대비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통일세의 도입 시기와 징수 방법에 대해서는 한국 스스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놀랜드 박사는 통일이 된 시점부터 10년 동안 한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약 6000억 달러(약 715조 원)로 올해 국가예산(293조 원)의 2.5배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북한문제가 아주 민감하고 중요한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문제를 겪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의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랜드 박사는 “김 위원장이 사망한 뒤 북한은 김정은을 포함한 소수의 지배그룹이 국가를 운영하는 집단 지도체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며 “강한 지배력과 상징성을 지녔던 티토가 사망한 뒤 유고슬라비아가 집단 지도체제를 도입하고 이 체제가 10년 가까이 유지된 것과 비슷한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김 위원장 사후 들어설 북한의 집단 지도체제로 북한이 당장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도층 간의 갈등과 산적한 내부 문제로 집단 지도체제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것 역시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위원장의 최근 중국 방문에 대해 놀랜드 박사는 “극심한 경제난을 벗어나기 위해 원조를 요청하고 후계체제를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경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사진)는 “휴대전화의 세계적인 강자였던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고전하는 건 결국 원천기술 개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IT, 자동차, 철강, 화학 같은 주력 산업에서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 기업을 빠르게 벤치마킹하는 전략으로 현재 수준까지 왔다”며 “현재의 성과가 놀라운 것이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기술을 선도하는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고 원천
지금처럼 첨단기술에서는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밀리고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이나 인도에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한 단계 높은 도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한국의 정부와 기업은 ‘돈이 없어서, 아직 능력이 없어서 원천기술은 신경 못 쓴다’고 변명했지만 이제는 모든 여건이 다르다”며 “이미 강점을 지닌 IT와 차기 녹색성장 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원자력 산업 쪽에서 적극적인 원천기술 개발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