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어떤 게임이 떠오르시나요? 조그만 기계 앞에서 ‘조이스틱’이란 막대기로 비행기를 조종하며 동그란 버튼을 눌러 총알을 쏘아대던 ‘갤러그’? 아니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전사나 마법사의 역할을 맡아 가상 세계를 탐험하던 ‘울티마’? 이런 게임이 생각나시는 나이든 분들께 게임이란 순수한 ‘환상’이었습니다.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환상.
하지만 세상이 변한 만큼 게임도 변했습니다. 이제 게임은 순수한 환상이 아닙니다.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서 벗어나기도 불가능합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면 과거 스포츠를 잘하던 친구처럼 또래 집단에서 인기를 얻습니다. ‘아이온’ 같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그 지위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아 스트레스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이제 게임은 현실을 적당히 이용할 정도로 영리해진 거죠.
게임 디자이너들은 여기서 더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차라리 세상을 게임처럼 디자인하자는 거죠. 스켈게임의 제시 스켈이라는 게임 디자이너는 “예를 들어 칫솔에 센서를 달아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면 10점, 3분 이상 하면 10점 추가, 이런 식으로 포인트를 모아 친구들과 경쟁하는 게임을 만들면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른이라고 다를까요? ‘상사가 화를 냈는데 사표를 내지 않고 참는 퀘스트’를 마치면 100점, ‘거래처 상대방이 요청한 서류를 팩스로 3분 내에 보내는 퀘스트’는 50점, 친절하게 확인전화를 해주면 추가로 30점, 과장 승진을 하면 중간보스를 이겼으니 1000점. 이런 게임은 아마 ‘월드 오브 세일즈맨: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겠죠.
게임은 현실과 비슷하지만 차이도 뚜렷합니다. 현실처럼 게임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많은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익힙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수가 때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져 복구 불가능한 실패가 됩니다. 반면 게임에서 실수란 툴툴 털고 일어나 재도전할 수 있는 별것 아닌 일입니다. 그렇다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이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게임처럼 살 수 있는 현실은 삶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