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자나 정책 결정자도 (특히 한국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불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 정부가 과학기술을 지원하는 이유로 ‘경제 발전에의 기여’를 가장 많이 들고 있어, 과학기술자는 경제적 이익만 따지는 차가운 인간이라는 편견을 심화시킨다.
그러나 과학과 공학은 자연의 원리를 알아내는 진리탐구나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한 경제발전의 도구로서의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과학회의’가 채택한 선언문에 명시했듯이 과학과 공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사회 안의,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이다. 즉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이 중요한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회 안의,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이 널리 실용화됐다. 한 예로 다국적기업인 ‘베스터가르드 프랑센’이라는 회사는 휴대용 즉석정수기인 라이프 스트로(LifeStraw)를 개발하여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 주민에게 값싸게 보급함으로써 수인성 전염병 예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GE는 병원시설이 없는 오지의 주민을 의료진이 찾아가 진료하도록 간편한 휴대용 의료장비를 저가로 공급한다. 이처럼 사회의 어려운 사람을 챙기는 따뜻한 과학기술이 점점 퍼지고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아직도 많이 뒤처져 있다.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 중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환경과 보건 등 소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투자는 전체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과학기술 투자가 산업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도그마가 너무 강력하여, 환경부나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친인간적 연구개발 사업도 당당히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기치를 내걸지 못하고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사업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평가 잣대가 왜곡되어 올바른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사실 요즘 과학기술은 고도로 발달되어 잘 이용하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더욱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홀몸노인의 문제가 점점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IT와 센서 기술을 이용하면 사회복지사가 일일이 찾아가지 않더라도 노인의 상태를 쉽게 모니터할 수 있을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