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박상진 엮음/한길사
《“헤라클레스의 좁은 두 기둥 사이로 물을 흘려보낼 뿐 온통 육지에 둘러싸여 지중해라 불린 바다는 단지 ‘바다’만을 가리키지 않았다.… 지중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광활한 대륙들로 뻗어나가고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까지 팽창하는 엄청난 변용을 보여왔다. 지중해를 들여다보면 지혜로웠던 시절이든 오만했던 시절이든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육지에 갇혀 문명을 낳은 바다
이 짙푸른 바다를 건넌 것은 ‘소’였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소가 그려져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 황소 숭배는 오래된 전통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전역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 속 에우로파 이야기에도 소가 등장한다. 지금의 레바논에 해당하는 페니키아의 공주인 에우로파는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의 등에 올라타고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고 그 이름이 ‘유럽’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성경에서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 형 아론이 만들어낸 우상 역시 금송아지였다.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에도 소와 얽힌 신화가 있다. 최고신의 부관쯤 되는 미트라 신이 어느 날 산에서 발견한 소의 등에 올라탔고, 소가 반항하자 소의 옆구리를 찔러 죽였다. 이때 소의 옆구리에서 온갖 곡식과 채소, 물고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지중해는 이후로도 유럽 건축, 문학, 미술 등의 밑거름이 됐다. 그리스, 로마에서 시작된 건축의 전통은 초기 기독교시대와 비잔틴제국, 르네상스 등을 거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특히 지중해 건축에 녹아있는 동양적인 면모와 자연과의 일체성을 중시하는 특징은 19세기 아르누보 양식과 20세기 근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의 문화와 풍광에 영향을 받은 피카소의 그림, 지중해 지역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가난의 어둠과 지중해 푸른 바다의 눈부신 빛을 동시에 경험했던 카뮈의 소설 역시 지중해가 갖는 문화적 힘을 확인시켜준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