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순창 회문산에서 열린 ‘남녘 통일 애국열사 추모제’. 솜털 보송보송한 중학생 들이 “전쟁 위협하는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 “우리 편지 못 가게 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회문산은 6·25전쟁 때 남한 공산화를 위해 무장 게릴라 활동을 한 빨치산의 본거지다. 인솔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북지부 통일위원장인 전북 임실군 관촌중학교의 김형근 교사였다. 대한민국에 총을 겨눴던 빨치산을 애국열사로 가르친 전교조 교육에 자식 가진 부모들은 경악했다.
▷2월 전주지방법원 진현민 판사는 피고인 김 씨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해칠 만한 실질적 해악성이 없고, 이적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젊은 단독판사의 ‘튀는 판결’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이 판결 직후 이 사건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법관의 양심이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돼선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어제 부장판사와 2명의 배석판사가 함께 판결하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왔다.
▷전주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김병수 부장판사)는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을 정도로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에 동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추모제에서는 빨치산을 통일애국열사로 호칭하고 그 뜻을 계승하자는 발언도 있었다. 학생들이 당장 국가안위에 해를 끼치는 활동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이들에게 빨치산 이념을 심는 교사의 경우는 반국가단체(북한)의 활동에 호응 가세하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은 “교사가 사리판단이 미숙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들을 빨치산 행사에 데려갔고, 학생들이 당장은 국가안위에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머리 속에 편향된 이념이 각인돼 장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反)하는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판결에 의문을 제기했다. 학생들에게 빨치산 교육을 시켜도 무죄라면 이제 교단에서 김정일을 찬양 고무하는 학습을 시켜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 최종심이 이 혼란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할 것인지, 아니면 빨치산 교육을 수호할 것인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