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앓이… 분노의 ‘포도’
3일 오전 8시 반경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서울시농수산물공사 과일 경매장. 이동경매대 위에 올라선 경매사가 “1만, 1만!” 하고 가격을 부르자 수북이 쌓인 사과 박스와 배 박스 사이로 중도매인들이 분주하게 옮겨 다니며 손에 쥔 리모컨으로 가격을 입력했다. 이날 경매에 참석한 중도매인들은 과일 박스를 열어보며 일일이 품질을 점검했다. 경매 관계자에 따르면 제7호 태풍 ‘곤파스’의 여파로 이날 경매에 올라온 물량은 평소보다 10%가량 줄었다.
○ 태풍 피해로 출하량 급감
이번 태풍으로 경기지역은 벼가 쓰러진 면적만 2218ha에 이르고 과수원도 1100ha가 낙과 피해를 보는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먹골배로 유명한 경기 남양주 지역에서는 약 70억 원의 피해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404ha에 이르는 배 과수원 가운데 150ha(약 37%)가 태풍 피해를 입었다. 농가별 낙과율이 80∼90% 안팎에 이르고 있다. 남양주 먹골배는 연간 약 1만 t이 생산된다. 그러나 이번 태풍으로 생산량이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공급량이 얼마나 바뀔지 몰라 현재로서는 가격 인상폭을 추정하기가 어렵다”며 “태풍 직전 7.5kg 기준 2만5000원에 형성되던 도매 가격이 못해도 1만 원 이상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 들썩이는 농산물 가격…난감한 식당
30년 넘게 청과 경매를 해온 이영신 서울중앙청과 상무이사는 이날 태풍 피해를 본 생산지를 분석하며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이 씨는 사과와 배 가격이 이상저온현상과 폭염 때문에 이미 작년보다 20% 가까이 오른 데다 곤파스의 영향으로 낙과 피해를 입은 과수원이 늘어나 10% 정도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사과(대과)는 5kg 기준으로 작년에 3만 원에서 4만5000원 사이에 형성되던 가격이 올해는 3만5000원에서 5만 원까지 올랐다. 이날 거래된 강원도 고랭지 지역에서 생산된 배추도 가격이 많이 올랐다. 태풍의 여파로 전날에 비해 물량이 절반밖에 안 들어와 10kg 기준으로 평상시 5500원에 형성되던 가격이 이날은 8500원으로 올랐다.
대형마트 관계자와 식당 업주들도 향후 가격 변동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전남 나주 쪽에서 생산되는 배 낙과 피해로 추석 선물용 과일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상추와 무의 경우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정상가격이 작년 대비 50% 이상 올라 음식점들도 고심 중이다. 지난해 이맘때 4kg 기준 6830원이었던 적상추는 이날 6만6900원으로 거래돼 무려 10배나 뛰었다. 올해 연이은 폭염과 태풍으로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종로5가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 씨(37)는 “채소값이 뛰었다고 당장 음식값을 올리기도 어려워 답답하다”며 “요즘은 상추가 아니라 ‘금추’”라고 말했다. 특히 채소가 주재료인 쌈밥집 등은 더 울상이다.
○ 수도권 태풍 피해 집중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남양주=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보령=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서 열린 사과, 배 경매에서 중도매인들이 상자에 담긴 과일의 품질을 확인하며 경매에 참여하고 있다. 이영신 씨(오른쪽)가 이동경매대 위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