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원 회원 김성한 선생
평생 언론인과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온 김성한 씨가 6일 별세했다. 2007년 8월 3권짜리 대하장편소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을 펴내고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19년 함남 풍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함흥 함남중, 일본 야마구치고, 도쿄대 법학부를 중퇴한 뒤 영국 맨체스터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인은 평생 언론인과 소설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1955년 ‘사상계’ 주간으로 언론계에 투신한 그는 1958년 동아일보로 옮겨 1981년까지 논설위원 출판국장 편집국장 논설주간 편집인 상무 등을 지냈다. 특히 고인은 언론 검열이 극심했던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에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맡아 독재를 비판하는 기사와 칼럼을 게재했다. 1970년대 말 고인이 동아일보 논설주간일 때 논설위원으로 일했던 남시욱 광화문문화포럼 회장은 “명문장에 단호한 어조로 늘 정권을 감시하고 독재를 비판했다”며 “논설을 쓰면 그날은 기관원의 삭제나 수정 요청을 피하기 위해 아예 회사 밖으로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상황과 윤리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한편 순응적 인간상을 배제하고 정의 구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인간형을 창조해냈다. 이를 통해 1950년대 소설가들과는 다른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대결 의식은 1960년대 후반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해 이후 ‘이성계’ ‘왕건’ ‘요하’ ‘시황제’ 등의 소설을 남겼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우리 역사를 소설화함으로써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1986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2007년 미수(米壽·88세)의 나이에 1966년 냈던 역사소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을 새롭게 손본 뒤 재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인문학상(1955년), 아세아자유문학상(1958년), 문화예술상(1976년), 인촌상(1989년), 대한민국예술원상(1995년), 보관문화훈장(1987년)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궁연 여사(가톨릭대 명예교수)와 아들 수완 씨(미국 거주), 딸 혜원 씨(주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9일 오전 7시. 02-3410-6906(7일 오전 10시경까지), 6917(7일 오전 10시경 이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