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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웃음뒤에 감춰진 섬뜩한 인간본성

입력 | 2010-09-07 03:00:00

국립극장 ‘日트래디셔널 교겐’
대본★★★★ 연기★★★★ 무대효과★★★☆ 번역★★★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본성을 희극적으로 포착한 ‘트래디셔널 교겐’의 첫 번째 에피소드 ‘보시바리(棒縛)’. 봉에 두 팔이 묶인 배우가 교겐 전문배우(교겐사)로, 2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노무라 가문의 계승자이자 영화배우로도 유명한 노무라 만사이다. 사진 제공 국립극장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말이 있다. 600년 전통의 일본 전통연극 교겐(狂言)의 260여 편 중 엄선한 3편을 선보인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트래디셔널 교겐’의 무대가 그러했다.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의 첫 무대로 3, 4일 서울 중구 장충단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른 이 공연은 3편의 독립된 이야기를 묶었다.

첫째는 막대기에 묶어둔다는 ‘보시바리(棒縛)’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술을 훔쳐 마신 두 하인을 벌주기 위해 꽁꽁 묶어뒀는데도 온몸을 이용해 2인 1조로 귀한 술을 몽땅 비워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다. 어깨에 걸친 막대기에 두 팔이 묶인 하인과 등 뒤로 두 손이 결박된 하인이 술을 마시겠다는 집념 하나로 온몸을 던지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웃음 포인트다.

둘째는 후천적으로 눈이 먼 사내가 지장보살의 영험이 내린 곳을 찾아가는 ‘가와카미(川上)’다. 열심히 기도한 덕에 사내는 눈을 뜬다. 신이 난 사내는 집으로 돌아와 꿈속에 나타난 지장보살의 말씀을 아내에게 전한다. 아내와 궁합이 맞지 않아 눈이 먼 것이기에 시력을 유지하려면 아내와 꼭 헤어지라는 이야기다. 20년간 눈먼 남편을 봉양해온 아내는 이를 강건하게 거부하고 사내의 기도는 도로 아미타불이 돼버린다.

셋째는 집 앞에 우후죽순으로 자라는 버섯 퇴치를 위해 신통력을 지닌 법사를 초빙해 일종의 퇴마의식을 펼치는 ‘구사비라(茸)’다. 법사는 자신이 배운 모든 주문을 외우지만 그때마다 버섯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악화된다. 법사가 주문을 외울 때마다 무대 곳곳에서 버섯머리를 대신해 다종다양한 삿갓을 쓰고 무릎걸음으로 등장하는 버섯인간들로 폭소가 터져 나온다.

14세기 노(能)와 같이 출발한 교겐은 노의 막간극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신성한 공간을 상징하는 ‘시메나와’라는 밧줄과 경사로움을 상징하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그려진 무대는 노와 똑같다. 다만 노가 몽환적이고 진중한 분위기의 가면 무용극이라면 교겐은 배우가 맨 얼굴로 등장해 인간세상을 풍자하는 가벼운 희극이다.

그래서 더 대중적 호소력을 지녔다. 현대에 들어 노의 막간극을 벗어나 독자적 공연으로 인기를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토에서도 보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 관객이 몰려들어 객석이 꽉 찼다.

교겐 전문배우인 교겐사(狂言師)로 일본 주요 무형문화재인 노무라 만사쿠(野村万作·80) 씨와 그 계승자이자 ‘음양사’ 등의 영화배우로도 유명한 아들 만사이(萬齋·44) 씨, 손자 유키(裕基·10) 군 등 3대가 나란히 출연한 점도 작용했다.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예술감독이기도 한 만사이 씨는 “교겐은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 욕망의 근원적 원리를 잘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폭소를 터지게 만든 세 편이 하나로 묶였을 때는 그 웃음의 이면에서 뭔가 낯설음이 느껴진다. 그것은 현대 정신분석학자와 철학자들이 천착해온 섬뜩함(the uncanny)이다.

독일어 ‘Das Unheimliche’의 번역어인 섬뜩함은 익숙한 사물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지칭한다. 프로이트는 이를 무의식적 진실이 출현하는 순간으로 봤고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인간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으로 봤다. 라캉은 이를 상징계 이면에 감춰진 실재계의 흔적이 발견되는 순간으로 해석했다.

이런 섬뜩함이 어떻게 ‘트래디셔널 교겐’의 웃음과 연결될 수 있는가. 이 작품의 세 에피소드는 모두 근대적 합리성으로 포착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불가해한 욕망을 그려낸다. ‘보시바리’의 하인들은 그토록 곤욕을 치르고서도 다시 술을 마시겠다는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와카미’의 아내는 설사 남편이 다시 눈이 멀어 남편 노릇을 못하더라도 그에 대한 집착을 포기할 수 없다. ‘구사비라’의 통제 불능의 버섯은 이 섬뜩함에 가장 가깝다. 그 어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미친 자연’이기 때문이다.

이는 섬뜩함을 인간이 자연에서 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고리’에 대한 신화적 기억으로 풀어내는 슬라보이 지제크의 해석과 일맥상통한다. 이 잃어버린 고리는 자연에서 문화로 이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만 상징질서의 지배를 받는 문화의 관점에선 ‘미친 자연’으로밖에 파악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교겐이 미치광이의 헛된 말이란 ‘광언기어(狂言綺語)’의 약어라는 점에서 이는 의미심장하다.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의 이성이 놓치고 마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