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칼린 트위터 순식간에 팔로우 1만4000명, 폭발적 인기…● 한국어가 가능한 '여자 히딩크', 직장인들 "이런 상사와 일하고 싶어…"
박칼린 감독과 함께-배다해씨 트위터
배우보다 더 훤칠한 외모, 중성적인 마력, 부드러운 카리스마, 압도적인 음악 실력….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을 통해 음악 감독으로서 인상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박칼린(43)이 방송이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국적의 음악인, '뮤지컬 음악감독 1호'라는 타이틀이 전부였던 그가 올 여름 TV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국민적인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것. 수많은 누리꾼들은 "제2의 강마에 탄생을 넘어 마치 한국어를 구사하는 히딩크를 보는 것 같다"며 "이런 상사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환호한다.
그녀가 연출했던 각종뮤지컬 작품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면서 뮤지컬 관계자들의 입도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9월8일 KBS 심야음악프로그램인 '음악창고'에서는 박칼린을 초청해 그녀의 라이브 음성을 함께 감상하며 '남자의 자격-하모니편'이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이른바 '박칼린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감독 박칼린 신드롬, 도대체 왜?
그는 '남자의 자격'이 정한 아이템 '남자 그리고 하모니'를 진행할 음악 감독으로 초빙됐을 뿐이다.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김성민 이윤석 이정진 윤형빈 등 7명의 멤버와 23명의 오디션 합격자가 화음을 맞춰 9월 3일 거제도에서 열린 합창대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미션이 종료될 예정이었다. 시청자들은 무론 출연진들의 생각도 얼추 비슷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주인공 음악감독 박칼린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그에게 '여자 히딩크'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다(사진=KBS)
이런 생각으로 합창단에 들어온 MC들은 열정이 결여돼 있었고, 초보단원들은 실력이 부족해 보였다. 이런 오합지졸로 합창단을 꾸릴 수 있을지조차 초반엔 미심쩍었다. 그런데 낯선 음악 감독은 끊임없이 보다 높은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며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
이들의 열정이 없는 화성은 박칼린 감독의 불벼락을 피할 수 없었다. 하모니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솔로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미션이 부여됐다. 미녀 합창단원은 끝내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능력과 부족한 열정을 자책하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처음엔 화음은커녕 모두가 엇박자 내기에 바빴지만, 박칼린을 중심으로 단 2달 만에 이들은 이내 환상의 하모니를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주인공인 박칼린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칼린에 대한 인기는 그녀와 비슷한 또래인 30~40대 남성들로부터 특히나 폭발적이다. 물론 음악 실력이나 외모에 대한 호감 때문이 아니다. 대다수가 그녀의 '카리스마'를 먼저 언급하며 그녀가 갖고 있는 인생과 음악에 대한 '압도적인 열정'에 주목한다.
30대 후반의 직장인 최현배씨는 "'남자의 자격'에서 박칼린 감독이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MC를 포함한 30여명에 달하는 초보단원들을 이끌며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며 "무계획적으로 호통만 치거나 '빨리빨리'만을 외치는 우리 주변의 리더들과 달리 평범한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깨우치게 하는 리더의 역할에 감동했다"고 토로한다.
문화평론가 조희제씨는 '박칼린 신드롬'이 2007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등장했던 뮤지컬 배우 '박해미 신드롬'과 흡사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른바 사회에서 40대 여성리더 캐릭터가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박해미는 당찬 여장부상에 그쳤다면 박칼린은 여기서 '전문성'과 '지도자'의 이미지로 한 걸음 나아갔다"며 "특히 프로젝트 구성원 누구하나 내치지 않고 개개인의 능력에 눈뜨게 만든다는 점에서 남자 직장인들의 관심을 끈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칼린이 뒤늦게 TV 예능프로그램으로 각광받게된 이면에는 '소통을 중시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대한 대중의 목마름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단순히 리더십 영역에 머문 것만도 아니다. 그녀가 방송에서 만성 신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다고 토로하자, 많은 이들이 눈물을 쏟기도 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낙관주의와 열정을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큰 감동을 느꼈다.
▶한국인? 미국인?, 박칼린은 누구일까…
1999년 뮤지컬 \'명성황후\' 음악감독으로 활약하던 시절의 박칼린. 그녀는 2000년대 뮤지컬 붐의 주역이기도 하다.(동아일보 DB)
박칼린은 1990년대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음악 감독'이란 직책으로 활동한 인물. 현재는 동아방송대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LA가 고향인데, 3살 이후론 미국과 부산을 오가며 양국의 문화를 모두 흡수하며 성장했다. 이름도 외모도 국적도 분명 외국인이지만 그녀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한동안 부산 경남여고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미국에서 첼로를 배우며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서울대 대학원으로 건너와 국악을 공부했다. 피아노, 첼로를 비롯한 서양악기는 물론이고 가야금, 대금, 장구 등 우리 악기 모두를 마스터할 정도로 그녀의 속에는 동양과 서양이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다.
또한 명창 박동진로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3년을 제자로 사사한 이력까지 갖고 있다. 하와이를 방문한 박동진 명창의 통역을 맡게 된 그녀에게 그는 "너 소리해야 겠다"고 제안했다는 것. 이후 박동진의 수제자로 인정을 받을 정도로 열정을 다해 판소리를 익혔지만 미국인이라는 핸디캡으로 인해 소리꾼의 길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녀의 음악 DNA는 창이 아닌 뮤지컬에서 꽃피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뮤지컬 연출가 윤호진씨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1995년 '명성황후'를 시작으로 '오페라의 유령' '페임' '렌트' '사운드 오브 뮤직' '시카고' '노트르담의 꼽추' '미스 사이공' '아이다' 등의 음악감독을 도맡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상당수 뮤지컬의 음악을 책임지며 2000년대 뮤지컬 황금기의 주역으로 활약한 것이다.
때문에 뮤지컬 계에서는 "20년 가까이 음악 감독으로 일하며 쌓인 내공이 '남자의 자격'에서 그저 조금 드러났을 뿐인데 대중들이 흥분하고 있다"고 놀라워한다.
▶남자의 자격-하모니편이 남긴 것 '열정의 크기'
9월3일 '남자의 자격'팀은 경남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7회 거제전국하방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은 영화 '미션' 주제곡 '가브리엘의 오보에'에 가사를 붙인 '넬라 판타시아'와 만화영화 주제곡 메들리를 소화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대회에 출전해 합창하는 동영상은 유튜브와 판도라 TV 등에 올라와 있다.
박칼린 감독은 9월4일 트위터를 통해 "'남격' 훌륭하고 감동적으로 끝났다"며 "Thank you everybody(모두 감사해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몸은 동났으니 오늘은 집콕. 아무 것도 하기 싫음. 그래도 괜찮겠죠? 하루 정도는?"이란 표현으로 숨 가쁘게 달려 온 후 맞이한 휴식의 기쁨을 토로했다.
"제 좌우명은 '이왕 하기로 한 것은 똑바로 하라'에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열정의 크기에서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는 법이거든요."
'남자의 자격'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일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자기 일에 대한 피와 눈물 없이는 절대로 원하는 수준의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실제 자신이 그 모범을 보이면서 시청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건넨 것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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