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김중혁 지음/380쪽·1만1000원/창비
소설집 두 권으로 단숨에 문단의 스타가 된 그인 만큼 첫 장편을 집필한다는 소식에 자연히 기대가 모아졌다. 장편을 붙잡은 지 꼬박 3년 만에 ‘좀비들’이 나왔다.
한국에선 유례를 찾기 어려운 좀비 소설이니 그것만으로도 일단 희귀하다. 그런데 여타의 공포물처럼 등골을 서늘하게만 하지 않는다. 매끄럽게 잘 읽혀 장르소설의 문법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는 듯 보이지만, 휙휙 넘기고 “재미있다”고 평하고 말기엔 뭔가 찜찜하다. 그 ‘무엇’이 김중혁 씨가 만들어낸 좀비들의 다른 부분이다.
김중혁 씨는 소설 속 ‘좀비’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지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좀비가 나오는 것은 홍혜정 할머니가 죽은 다음부터다. 할머니의 딸 홍이안과 만나게 된 채지훈과 뚱보 130. 이들 앞에 느닷없이 좀비가 나타나고 이들은 혈투 끝에 좀비를 처치한다. 다음 날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면서 고리오 마을은 봉쇄된다. 그러나 마을 곳곳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좀비로부터 채지훈과 뚱보 130, 홍이안은 도망 다니는 것밖엔 할 수 없다. 급기야 뚱보 130이 좀비들의 공격을 받고 좀비로 변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기존 공포소설에서 좀비를 ‘처단해야 하는 괴물’로 묘사한 것과는 다르다. 그가 보기에 이 괴물은 ‘몸은 움직이지만 기억이 없는’ 안타까운 대상이다. 엄마와 형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채지훈, 죽은 어머니의 지난 인생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홍이안 등 소설의 인물들은 좀비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법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을 두고 작가가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