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희의 뮤지컬 데뷔작인 창작 뮤지컬 ‘페퍼민트’(2003).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 운명적인 뮤지컬과의 만남
비를 맞으며 조깅 중 들어간 낯선 바
극작가·공연프로듀서 이유리와 만남
둘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글쓰기 시작
자신의 인생 연기한 ‘페퍼민트’ 탄생
2003년 어느 날, 비를 잔뜩 맞으면서 조깅을 하던 최성희는 목이 말라오자 눈에 띄는 바(Bar)로 무작정 들어갔다.
왕창 비에 젖은 젊은 여자가 불쑥 안으로 들어오자 바에 있던 한 여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는 최성희에게 “혹시 뭐 하는 사람이냐”라고 물었다.
아니 아무리 비를 맞았다고 해도 ‘국민 그룹’ S.E.S의 바다를 몰라보다니. 최성희는 장난기가 급발동해 “내가 누군 거 같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인디언 추장 딸 같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바에서 두세 시간 동안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다. 최성희는 그제서야 “아마 TV를 잘 안 보시는 모양인데, 사실은 난 가수이고 가끔 TV에 나온다”라고 털어놓았다. 여성은 “어 … 잠깐만, 잠깐만. 아, 맞네! 그 S.E.S!”하고 알아보았다.
최성희가 이날 운명적으로 만난 여인은 극작가이자 공연 프로듀서인 이유리였다. 두 사람은 함께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산 속 콘도로 들어갔다. 최성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작가는 이를 토대로 글을 썼다.
아버지의 건강이 안좋아 경기도 시흥시 도두머리에 내려가 살던 시절.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복숭아가 손에 쥐어졌던 그곳. 뒷산에 올라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으면 바람이 귀에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바다’는 작품 속 동명의 주인공 ‘바다’로, 바람의 속삭임은 ‘터주’라는 영혼으로 녹아들었고, 이렇게 해서 한국 창작 뮤지컬사에 남을 걸출한 작품 하나가 탄생하게 되었으니 바로 ‘페퍼민트’였다.
불우한 시절을 딛고 톱 가수가 된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와 귀신 ‘터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페퍼민트’.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