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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KAIST 이사장 선임된 “오 명” 前부총리 겸 과기부장관

입력 | 2010-09-13 03:00:00

“난 조율 전문가… 정부-총장-이사회 역할정리부터”




소통과 조정, 화해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6일 KAIST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오 이사장은 “바람직 한 대학 이사회 모델을 만들어 KAIST가 우리나라 대학 운영의 역할 모델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덥고 습해 불쾌지수가 높았던 이번 여름, 과학기술계는 KAIST 총장 선출 문제로 더욱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끝에 서남표 총장은 7월 연임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총장 선출 과정에서 KAIST 이사회가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 이달 6일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70)이 3년 임기의 KAIST 이사장에 전격적으로 선임됐다. 4년간 총장으로 몸담았던 건국대를 떠난 지 며칠 안돼 웅진그룹의 태양광에너지 회장 겸 그룹 고문을 맡은 데 이어 KAIST 이사회까지 담당하게 된 것이다. 과학계는 이에 대해 “‘해결사’로 오 전 부총리만 한 인물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웅진빌딩에서 오 신임 이사장을 만났다.

―KAIST 이사장 자리에 세간의 관심이 쏠려 있다. 부담스러웠을 법도 한데 이사장을 맡은 이유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남을 돕는 걸 좋아한다. 정부와 대학을 두루 거친 경험을 살려 이사회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얼마 전 서남표 총장과 정부 측 모두와 환영 인사를 했다. 대학도 정부도 잘 안다. 이사회에서 대학과 정부, 양쪽 입장을 잘 설명하면서 조율하겠다.”

총장 2번-장관 4번 역임 과학계 ‘해결사’ 취임식 건너뛰고 내달초 첫 이사회 준비

―이사장 취임식은 했나.

“이사장은 요란스럽게 외부에 생색내고 다니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취임식은 따로 안 했다. 이미 업무보고를 받고 있으니 이사장 일은 시작한 셈이다. 첫 이사회가 다음 달 8일 열린다. 그때 이사들과는 처음으로 인사하게 될 거다.”

―얼마 전까지 대학 총장이었다가 이사장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이사장으로 생각하는 바람직한 학교 운영 모델은 무엇인가.

“KAIST 이사장으로 ‘이사회-총장’ 역할의 모범을 만들겠다. 대학에 있어 보니 총장이 전권을 쥔 대학이 있는가 하면 이사장이 전권을 쥔 대학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이번에 이사장을 맡았으니 바람직한 이사회 역할, 대학 운영 방안을 만들 생각이다. 이사회는 정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기구고 총장은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이사회-총장’ 역할이 확실해지면 서울대 등 국공립대를 법인화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KAIST 이사회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듣고 싶다.

“KAIST를 한국 대학 운영의 역할모델이 되도록 만들겠다. KAIST는 대학이면서도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단체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대학과 정부의 요구 둘 다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다. 지금 KAIST의 가장 큰 문제는 ‘총장-정부-이사회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서 총장의 연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사회는 정부와 대학의 입장을 모두 모아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이사회가 모든 권한을 갖고 할 것이다. 총장은 이사회에서 결정된 것을 권한을 갖고 집행하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사회가 총장의 세부적인 집무를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 총장을 두 번 지냈다. 바람직한 총장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총장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이 통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조화가 중요하다. 지휘자가 수십 개의 악기를 잘 조율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총장은 대학 구성원들이 융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총장이 구성원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한다. 구성원 없이는 대학의 발전도 없기 때문이다. 개혁을 할 때는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까지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발전을 위한 개혁의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함께 가도록 설득해야 한다.”

―모든 조건을 다 고려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편이 단기간에는 성과가 클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충분히 논의하고 결정한 뒤에 일을 진행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조그만 보트를 몰 때는 필요에 따라 급하게 방향을 틀어도 괜찮지만 큰 배일수록 도착지를 보고 서서히 방향을 바꿔야 침몰 위험이 없지 않나. 건국대 총장 시절에도 부임 1년 동안은 겉으로 성과가 드러난 게 전혀 없을 정도로 대화와 회의만 했다. 하지만 결국 건국대가 연구개발에만 1000억 원을 투자하는 대학으로 성장했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 3명이 둥지를 튼 대학이 됐다.”

―최근 과학기술 지배구조(거버넌스) 개편이 추진 중이다. 전 과학기술부총리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정부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책임졌던 사람으로 후배들이 하는 일을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어떻게 개편하든지 간에 과학기술인의 자긍심을 살려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과학기술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연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사회가 결정하면 총장은 집행 맡도록 KAIST를 대학운영 모범사례로 만들 것”

―KAIST 이사장뿐 아니라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웅진그룹 태양광에너지 사업도 이끌어야 하는데 비전을 말해 달라.

“웅진그룹이 태양광에너지 사업 진출을 구상하던 4년 전부터 조언을 하며 관계를 유지해왔다. 웅진그룹은 윤리 경영을 실천하는 투명한 기업이라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태양광 분야는 아직 세계적으로도 표준 기술이 없다. 국제 경쟁력을 키워 선점할 수 있는 분야다. 태양광을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반도체 경험은 있어 기술적인 내용은 판단할 수 있다. 대학에 있으면서 관련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과도 친분을 쌓아 놨다. 웅진그룹이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게 있나.

“태양광 기술연구소를 만들 계획이 있다. 연구도 해야겠지만 세계 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게 연구소의 목적이다. 기술은 세계의 우수한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자들과 협업해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 웅진그룹이 태양광에너지에 성패를 걸어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정보기술(IT) 전도사 역할도 한다고 들었는데….

“세계 각국이 ‘IT 강국 코리아’로부터 도움 받기를 원한다. 개발도상국은 인프라가 전혀 없던 한국이 단기간에 IT 강국으로 발전한 비결을 전수받고 싶어 한다. 콜롬비아의 경우 4년 전부터 IT 발전정책을 수립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 파라과이의 IT 마스터플랜도 만들고 있다. 12월에는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파라과이 국회에서 이 내용을 설명하기로 돼 있다. 지난주부터는 르완다 대통령의 요청으로 르완다 IT 발전을 위한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오명 KAIST 이사장::

―1940년 서울 출생
―1962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학사)
―1972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전자공학과 졸업(공학박사)
―1987년 체신부 장관, 교통부 장관(1993년), 건설교통부 장관(1994년)
―1996년 동아일보 사장, 회장(2001년)
―2002년 아주대 총장
―2003년 과학기술부 장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2004년)
―2006년 건국대 총장
―현재 웅진그룹 태양광에너지 회장 겸 그룹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