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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칼럼/정주현] 한 번 더 노래하듯 유쾌하게, ‘노다메 칸타빌레’

입력 | 2010-09-13 11:13:00


'노다메 칸타빌레 Vol.1' 극장판의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차이코프스키 1812 서곡의 연주장면일 것이다.

말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아 1812 서곡을 연주하게 된 치아키(다마키 히로시 분)는 음악의 전개에 맞춰 곡의 배경과 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관객에게 이야기하듯 천천히 곁들여 나간다. 나폴레옹의 침략에 전운이 감도는 러시아의 시골마을, 프랑스의 60만 대군에 맞서 싸우는 러시아 군의 대포소리, 그리고 찬란한 승리를 거둔 후의 신나고 씩씩한 행진….

그 자체로도 이미 한 편의 영화 같이 리드미컬한 이 명곡은 치아키와 단원들의 열정적인 연주와 차분한 설명, 그리고 한층 보강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로 시각과 청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명장면으로 태어났다. 더구나 유럽 현지의 뮤직홀에서 촬영된 아름다운 영상미는 보너스로 주어진 제대로 된 덤.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 원소스 멀티유스의 '좋은 예'

실제로는 15분을 넘는 긴 곡은 극 삽입용으로 짧게 편곡이 되었지만, 원작인 만화나 TV 드라마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울 만큼의 충분히 긴 시간이 오롯이 이 곡의 연주에 할당되었다. 극장판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최대한 활용된 것이다. 거기에 연주를 감상하며 때로는 어깨를 들썩이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노다메(우에노 주리)의 모습까지 함께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감동적인 클래식 음악의 연주회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청취자의 폭이 넓지 않은 클래식 음악을 이처럼 쉽고 경쾌하게, 그러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고 표현해 낸 사랑스런 영화가 또 있을까. 연주 중간 대포를 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이 시퀀스의 흡입력은 강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하면서 클래식 음악 열풍을 몰고 온 적이 있었지만, '노다메 칸타빌레'는 이 보다 앞서 일본에 클래식 음악 붐을 몰고 온 원조라 할 수 있다. 원작 만화가 2001년 연재를 시작한 이후 3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인기를 끌었고, 이어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후지TV 에서 평균 20%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음악을 소재로 하는 작품인 만큼 어쩌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는 극장판의 전, 후편 역시 일본에서 공전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잘 만든 원작 하나가 여러 개의 황금알을 낳은, 대표적인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여전히 매력적인 '괴짜' 노다메와 '치아키 센빠이'

사실 '노다메 칸타빌레'에 대한 이 같은 관객들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주인공 노다 메구미의 전무후무한 개성 있는 캐릭터로부터 나온다. 주로 애칭 '노다메'로 불리는 이 소녀는 위생관념이라곤 손톱만치도 없고 먹을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며 치아키에 대한 사랑은 덮어놓고 무조건적인, 정녕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괴짜이다. 거기에 기이한 상상력마저도 풍부해 머릿속에는 '변태의 숲'이 있고 (곰도 강아지도 아닌) 망구스 인형과 대화를 하며 어린아이처럼 우주 여행을 하며 우정을 깨닫는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프리고로타'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보통의 성인이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성 싶은 희한한 캐릭터이지만, 노다메의 진정한 매력은 이러한 엉뚱함에 더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과 음악에 대한 순수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기묘한 조합의 캐릭터가 좌충우돌 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사랑과 미래에 대해 진지한 성장통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관객들은 노다메를 사랑하고 응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상대역인 '치아키 센빠이' 역시 학교 내의 모든 여학생들이 우러러보는 전형적인 만화 속 왕자님형 캐릭터이지만, 그 무뚝뚝함 뒤에는 사람들에게 곧잘 이용당하는 어수룩함을 숨기고 있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석의 양 극처럼 다른 성격을 가진 노다메와 알듯 말듯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면서,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을 탄탄히 받치고 있다.

극장판은 이러한 두 주인공 노다메와 치아키의 톡톡 튀는 캐릭터와 발랄한 코믹함을 그대로 살려 내었다. 이야기, 설정, 대사, 그리고 화면 구성까지 TV 드라마 그대로다. 감독 역시 드라마를 연출했던 타케우치 히데키가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하여,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어떠한 도전도 없이 검증된 성공의 공식만을 따랐다는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널리 사랑 받은 '노다메'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인 만큼, 원작의 재미를 훼손시키지 않은 데 대해 일종의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 번 보아 왔던 패턴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웃고 박수 치게 하는 노다메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무대를 일본이 아닌 유럽으로 확장해 좀더 화려하고 장엄한 스케일을 담아낸 것은, 기존 드라마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관객층까지 흡수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기민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극장판에서 더욱 높아진 클래식 연주의 비중

그러나 무엇보다도 극장판의 가장 큰 장점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한층 풍부해진 클래식 음악의 연주장면이 아닌가 한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명곡으로 뽑을만한 베토벤의 교향곡 7번부터 라벨의 볼레로,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 그리고 바하의 피아노 협주곡 1번까지, 제대로 된 음향 시스템이 갖추어진 '극장'이라는 환경에서 한 번쯤 음미해보고 싶은 음악들이 한껏 그 향연을 펼친다. 짤막짤막한 소품적 배경음악보다는 정통 클래식의 연주 비중을 높였다는 점 역시 드라마와는 구별되는 점이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합주, 즉 각 파트의 악기들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하나의 하모니라는 것. 완성된 음악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 요구되는 협력과 조화의 모습을 함께 담아낸 것은 '노다메 칸타빌레'가 분명한 '음악영화'라는 것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동일한 멜로디와 리듬을 악기의 편성만을 바꾸어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 연습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진지하게 느껴진다.

늘 같은 얼굴, 같은 그림일 수 있는 만화와는 달리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세월이 흐르면 나이를 먹는다. 2006년 첫 드라마 방송 당시 아이처럼 앳되기만 하던 우에노 주리는 어느덧 성숙한 숙녀가 다 되었고, 다마키 히로시도 이제 서른을 넘기고 있다. 영화에 붙여진 '최종악장'이란 부제는, 따라서 이들이 진정한 피날레를 향해 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준 이 커플의 모습이 더욱 반가운 것은 아마도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애틋함이 더해져서 이기도 할 것이다. 단, 극장판의 전, 후편이 일본에서는 이미 개봉이 끝난 만큼, 이제야 전편만이 한국에서 개봉되는 것은 좀 아쉽다. 더구나 여유롭게 후편의 개봉을 기다리기엔, 전편의 엔딩이 좀 급작스럽기도 하다.

정주현 영화진흥위원회 코디네이터 janice.jh.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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