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비서진은 정권 초기 새 정부에서 일할 공직후보자들에게 63가지에 달하는 질문서를 보냈다. “50달러 이상 교통범칙금을 물었던 적이 있느냐” “가족 가운데 로비에 관여한 사람은 없느냐” 등의 질문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본인의 이름으로 제출한 모든 이력서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어 백악관 인사국,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등이 후보자의 이웃, 친구는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탐문조사를 벌이고 각종 기록을 뒤졌다.
▷미국의 공직후보자 검증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2009년 1월 오바마 행정부의 상무장관으로 내정됐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자신과 특정업체의 유착관계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장관직을 포기했다. 보건장관에 내정됐던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청문회 전에 스스로 물러난 것도 과거 3년간 체납한 세금 10만 달러를 뒤늦게 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앞으로 고위공직자를 인선할 때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내부적으로 모의(模擬)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기로 했다. 위장전입, 음주운전, 재개발지역 부동산 매입 등 200개 항목에 걸쳐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이 없는지 기술한 문답서를 사전에 제출하고, 각종 조사까지 통과한 사람만이 모의 청문회에 오를 수 있다. 대통령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수석비서관 등 10명 내외의 청와대 사람들로 구성되는 인사추천위원회가 국회 청문위원 역할을 맡아 실전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다 싶은 총리·장관 후보자들을 걸러내겠다는 계산이다.
▷인사검증 제도를 촘촘히 정비하는 것은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8·8 개각에서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를 부른 흠결 대부분은 청와대가 검증 과정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투기용 아닌 교육용(위장전입)’ ‘노후 대비(쪽방촌 건물 매입)’ 식의 설명을 온정주의로 받아들여줌으로써 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청와대부터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우면 약간의 흠결은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구에게든 예외 없이 적용할 합격·불합격 기준을 내놓고 공정하게 지켜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