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댁’들의 정성으로 빚는 추석 음식
고택에서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을 바람을 타고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추석은 기다림이고 만남이며, 풍요다. 왼쪽부터 이무호, 이동여, 문정현, 정영교, 임양화 씨.
“야야, 나이 팔십에 새댁이 소리를 다 듣네.(웃음)”
9일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수애당(水涯堂·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6호)에 전주 류(柳)씨 가문 며느리 5명이 모였습니다. 저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네요. 열기 없는 바람 한 줄기에 치맛자락이 나풀거립니다. 이 일대는 전주 류씨 집성촌입니다. 수애당은 독립운동을 한 수애 류진걸 선생이 1939년에 지은 집이지요. 집 뒤로 591m의 아기산이, 집 앞으로 임하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한복 어떻노.”
“색깔 곱네.”
“항렬로 따지면 내가 니 아지매다. 옛날에는 꼬박꼬박 존댓말 쓰고 그랬다. 항렬이 열 살은 접고 간다 카드라. 세상 좋아졌재.”
“요새 누가 그런 거 따지노.”
정영교(74), 이무호 할머니(73)가 서로 티격태격합니다만, 눈가에는 웃음을 머금고 있네요. 임양화 할머니(79)는 ‘큰 언니’답게 빙긋 웃으며 이들을 바라봅니다.
널찍한 대청마루에는 토란대, 쪽파, 쇠고기, 사과, 배, 곶감, 호두, 달걀, 밀가루, 떡이 한 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과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알루미늄 쟁반도 준비해 놓았네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들입니다. 할머니들은 수애당의 추석맞이를 도우러 온 참이에요. 차례상 준비를 하기 위해 잘 싸둔 제기(祭器)도 꺼내 왔습니다.
수애당의 젊은 안주인 문정현 씨(43)는 이리저리 동동거리며 돌아다니느라 발이 안 보일 정도입니다. 생선찜과 닭조림이 잘되고 있는지 수시로 부엌을 살피면서 할머니들의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시어머니 이동여 씨(74)가 또 부릅니다.
“야야, 당근 어디 있노. 당근이 있어야 산적 색깔이 이쁘다. 얼른 갖고 온나.”
서울 생활을 하던 문 씨가 남매를 데리고 남편 따라 시부모 두 분이 지키고 있던 수애당으로 내려온 지 10여 년째. 이제는 차례상이며 기제사(기일에 지내는 제사)상은 뚝딱 차려냅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그의 말투에 안동 사투리가 슬쩍 섞여 나오기까지 합니다.
시어머니는 “우리 ‘새 사람’이 몇 해 지나보이 아무케나 잘한다”고 은근슬쩍 칭찬을 합니다. 가족끼리는 ‘에미’라고 칭하지만 손자 승민(20)이 대학생이 된 지금도 며느리를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올봄 이상기온과 냉해에 이어 태풍 ‘곤파스’가 과수원과 논밭을 휩쓸고 간 터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문 씨는 어른 주먹만 한 사과 3개를 1만3600원에 샀다면서 어이없어 합니다. 할머니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옛날에는 전 하나 부칠라 케도 집에서 키우는 닭이 달걀 낳기를 기다렸다. 요새사 돈만 주면 과일이고 뭐고 천지 아이가!”
글 안동=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사진 안동=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그래픽=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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