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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진위논란만 부른 설익은 ‘最古금속활자 발표’

입력 | 2010-09-17 03:00:00


1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1377년)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13세기에 주조된 금속활자의 실물을 확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서지학회장인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발표한 이 주장이 맞는다면 세계 인쇄의 역사를 바꿀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학계의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성급한 발표 과정으로 오히려 진위 논란만 불거졌다.

남 교수는 1일에 이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다보성고미술전시관에서 ‘금속활자와 증도가자의 이해’를 주제로 한 특강을 열었다. 자신이 확인한 금속활자가 가짜가 아니냐는 의혹을 반박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는 왜 이 활자가 13세기에 인쇄한 책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은 금속활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번각본(금속활자판 책을 목판에 새겨 찍은 복각본)의 일반 특성과 ‘직지’를 찍은 흥덕사 활자의 번각본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럼에도 “글자체가 다른 것 같다” “그 활자가 북한 개성에서 나왔다고 어떻게 확신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금속활자의 출처와 제작 연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 교수도 이날 발표가 설익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원래 3년쯤 뒤에 완전히 정리해 보고서로 내려고 했는데 올해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인 데다 소장자의 뜻으로 전시를 하게 돼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발표 장소가 학술 심포지엄이나 세미나가 아니라 고미술품을 거래하고 전시하는 갤러리라는 점도 신뢰에 흠집을 내고 있다. 남 교수가 “이제부터 학계가 같이 연구하자는 뜻에서 공개했다”고 말했듯이 학계를 통해 발표했더라면 진위 논란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 교수는 특강을 마무리하면서 “내 연구 업적의 명운을 걸고 발표한 건데 왜 가짜라고만 지적하나. 여러 분야의 학자와 토론과 연구를 함께 하고 싶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남 교수의 발표가 성급했다고 하더라도 세계사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면 하루라도 빨리 출처 확인이나 다양한 연구와 검증을 위해 학계 등이 나서야 한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