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 자녀, 건강보험 지원받는 키 늘리기 진료 독식● 최상위 20%는 최하위 20%보다 9.9배● 서울 강남>송파>노원, 시도별 경기>서울>대구>순● 연령별 10대 1만8139명(연인원)으로 가장 많아● “고소득층 집중 진료로 왜곡되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해야”
이런 가운데 ‘신동아’는 최근 키 키우기 진료 실적이 부(富)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건강보험공단에서 급여가 지급된 소득분위별 단신질환(또래 평균키보다 10㎝ 작거나, 또래 100명 가운데 가장 작은 1~3명에 들 경우) 진료 현황을 보니 소득이 높은 최상위 10%(연인원 8244명)가 최하위 10%(연인원 782명)보다 10.5배나 더 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보험의 적용인구를 10단계로 나눌 때 최상위 10분위는 505만명이고 최하위 1분위는 251만명이다. 수치상으론 10분위가 1분위의 2배이지만, 진료 실적은 10.5배나 많은 것이다. 최상위 20%(연인원 1만3830명)로 따져도 최하위 20%(연인원 1397명)보다 9.9배 더 진료를 받았다. 단신질환 진료가 명백하게 고소득층에게 집중돼왔음을 알려주는 셈이다.
평균가입자수를 감안한 수치인 진료실 인원을 비교했을 때도 소득이 가장 적은 1분위는 461명(연인원)으로 5.5%에 그쳤지만, 소득이 가장 높은 10분위의 경우 2376명(연인원)으로 28.6%나 돼 5.2배 차이를 보였다.
연령별로는 성장이 가장 왕성한 시기인 10대가 64.4%(연인원 1만8139명)를 차지했고, 9세 이하가 35%(9854명)로 그 다음을 이었다. 성장이 멈추는 시기인 20대에도 0.5%(140명)가 단신질환 치료를 받았으며, 극히 적은 수치이지만 30대(평균 8명), 40대(평균 4명)도 처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단신질환과 관련, 건강보험의 지원을 받아 성장호르몬 처방을 받은 전체 인원은 2007년 9928명에서 2009년 1만2012명으로 20.1%나 늘어났다. 관련 진료비도 2007년 18억4013만원에서 2009년 23억2113만원으로 26.1% 증가했다.
성장호르몬 처방 보험 급여 제한적
비급여 성장호르몬 처방은 몸무게에 따라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초등학교 3,4학년의 경우 한 달에 80만~100만원이 들어간다.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경우 16만~20만원 정도가 환자 부담이다. 건강보험 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에 치료 기간을 평균 1년으로 잡고 기타 비용까지 포함하면 1000만~1500만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당연히 부유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왜소증이 아님에도 성장호르몬 처방에 건강보험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는 현재 파악된 게 없고 실사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위 자료의 수치가 모두 심각한 단신질환에 대한 정확한 치료 기록이고, 빈부를 막론하고 이 질환이 고르게 퍼져 있다고 한다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단신질환 치료에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빈곤층이 치료를 덜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제로 부유층 자녀가 단신질환을 많이 겪고 있는 것이다.
부유층 자녀가 단신질환을 더 많이 겪고 있다는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빈부와 키에 대한 정확한 상관관계를 알기는 어렵지만, 부자일수록 발육상태가 좋고 몸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지표에서 드러난다. 9월6일 동아일보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 비만조사’를 인용해 부자일수록 몸 관리를 잘해 날씬하고, 가난할수록 영양불균형으로 뚱뚱하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부자 자녀가 단신질환을 더 많이 겪고 있다는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서울 여의도의 회사원 김모(36)씨는 “상식적으로 잘 먹고 잘사는 집 아이들이 발육 상태도 더 좋을 텐데,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보다 단신질환을 월등하게 많이 앓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계층 간 단신질환 치료의 큰 격차는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연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지영 을지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요즘 자녀가 단신질환 해당자가 아닌데도 성장호르몬 처방을 받아서 키를 키우려는 사례가 매우 많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지원을 받지 않고도 고가의 성장호르몬 처방을 받거나 성장 클리닉에서 발육부진과 관련한 다양한 진료를 받는 아이들이 매우 흔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건강보험 급여·비급여를 포함, 성장호르몬 투여 환자는 약 1만4000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성장호르몬은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다. 그러나 드물지만 두통, 갑상선 기능저하증, 얼굴부종, 측만증 등의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다. 또 극히 드물게 대퇴골 골단 분리와 같은 부작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지영 교수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제외하고는 성장호르몬 처방이 치료비용에 비해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의학적으로 이런 증상을 겪는 저신장이 아닌데도 굳이 성장호르몬 치료를 지원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키를 더 크게 키우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로서는 이 치료법이 가장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키가 크지 않는 이유가 다른 질환과 연관돼 있을 경우엔 해당 질환 치료 지침을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2008년 한국의 20세 남자 표준키는 173.4㎝, 여자는 160.6㎝. 1965년 이후 2005년까지 40년간 남자는 5.4㎝, 여자는 5.3㎝ 커졌지만 1998년 이후 10년간은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인위적으로 자녀의 키를 키우려는 부모들의 욕구는 끝없다. 2002년 서울시 초중고생 33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희망하는 키 조사에서 여학생은 169.2±4.1㎝, 남학생은 181.2±4.9㎝로 나타났다. 소아청소년과 한 전문의는 “키가 크고 작은 것은 상대적인 것인데, 절대적으로 어느 선 이상 자라야 한다는 건 욕심이 지나친 경우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계층 집중 ‘공정한 사회’ 아니다
안 의원은 또 “큰 키가 성공을 위한 길이라며 부모들이 자녀의 키를 크게 하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투입시키고 관련 클리닉에 열광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부 병원의 과장된 홍보로 인해 부작용도 뒤따를 수 있고, 자녀들에게 오히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제도 개선에 대한 지적은 여러 각도에서 나온다.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지만 진료를 받지 않는 건강보험 미이용자 현황 자료에서도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건강보험 미이용자 비율이 낮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즉 소득이 높을수록 건강보험 이용이 많다는 뜻이다.
또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소득이 높을수록 평균 가족수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많이 내기는 하지만 평균 가족수가 많아서 결국 혜택을 보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직장인 한 사람 앞으로 여러 사람이 부양가족으로 등록돼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최상위 10분위의 평균 가족수는 3명이지만, 최하위 1분위는 1.3인이다.
“건강보험 제도가 어느 정도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긴 하지만, 계층별로 편중된 의료 이용과 평균 가족수 차이 등 때문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소득자들의 진료를 위해 직장인, 중산층이 낸 건강보험료가 사용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현 건강보험 제도에서는 소득 중간계층, 가족수가 적은 사람들, 직장인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고비용 때문에 저소득층의 이용률이 낮은 진료과목에 대해선 보장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안홍준 의원)
정현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