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놀이본능을 자극하면 기업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일을 놀이처럼 생각하면 직원들의 몰입도가 높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샘솟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나이키 등은 직원들의 놀이본능을 자극해 혁신 기업으로 거듭났다. DBR 그래픽
일터에서는 흐느적거리던 직장인들이 왜 스포츠에는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보이는 걸까. 스포츠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 방식과 규칙을 표준화한 놀이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에게 스포츠 활동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놀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생산적인 일보다 비생산적인 놀이에 열정을 느낀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5호(9월 15일자)는 놀이와 직원들의 몰입, 기업 성장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 천하무적 야구단과 직장인의 놀이본능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성과를 내기 위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성과 동인)를 목적의식(Purpose), 실력의 성장(Mastery), 자발성(Autonomy)으로 정의했다.
이를 천하무적 야구단의 사례에서 확인해 보자. 천하무적 야구단의 목적의식은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상대팀과 기술, 체력, 협동심을 겨루어 이기겠다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선수들의 동기를 자극했다. 방송 초기 천하무적 야구단은 약체 중의 약체였다. 하지만 전문가의 조언과 선수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이제는 어엿한 아마추어 야구단 수준의 실력(Mastery)을 갖췄다. 마지막으로 야구단 멤버들은 일반적인 리얼리티 쇼 출연자 이상의 열정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참가자들의 자발성이 한몫한다. 심지어 한 연기자는 연습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나머지 출연자를 모두 자신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단역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 놀이에 대한 저항감 다스려야
놀이는 어린이들의 유치한 행동이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놀이와 학습의 관계를 중시한다. 동물은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평생 유용한 생존기술을 습득하고 사회성을 기른다. 협업을 통해 살아가는 영장류에게 사회성을 습득하는 놀이과정이 특히 중요하다. 잘 놀아야 잘 성장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간이 독보적 문명을 건설한다는 사실은 기업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동물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지적 우수함은 놀이본능과 그에 따른 학습이 오랜 기간 유지되었기에 가능했다. 놀이본능이 유지되는 동안 인간의 두뇌는 성장하고 학습을 지속한다는 얘기다. 특히 지식 노동자들의 학습능력을 자극하고 싶은 조직은 직원들의 놀이본능도 동시에 자극해야 한다. 구글, 애플, 나이키 등은 직원들의 놀이본능을 자극해 혁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 농부는 고된 노동을 즐기려 스스로 노래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결과 중심의 근무환경(ROWE·Result-Only Work Environment)이라는 새로운 경영전략이 관심을 끌고 있다. 근무시간이 아닌 결과물을 중심으로 기업을 운영하자는 접근으로 미국의 유통업체 베스트바이에서 시작됐다. 프레즌티이즘(Presenteeism·실직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행동)에 염증을 느낀 베스트바이 인사 담당 임원들은 근무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결과만 챙기는 근무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기업의 생산성은 10∼20% 증가하고 이직률은 낮아졌다. 이들은 얼굴을 내비치는 시간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지 말고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한 후 결과만 평가하자는 주장을 담아 ‘일이 형편없는 이유와 대처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일을 즐기지 못하는 직원과 그런 직원을 감시해야 하는 기업 사이의 숨바꼭질을 멈추는 방법이 있다. 일을 놀이만큼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 꼭 유흥을 즐겨야 놀이본능이 나오는 건 아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승무원이 랩으로 안전수칙을 소개하거나 비행 중에 승객의 생일파티를 해준다. 이런 직원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 선조가 농사나 뱃일을 하면서 불렀던 노동요의 의미를 되새기면 된다. 농부는 고된 노동을 즐기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다른 농부들은 그 노래에 박자를 맞춰 모내기를 하거나 잡초를 뽑는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직원들의 놀이문화도 바로 이러한 자발성에 근거한다.
국내 기업 중 연말마다 마술사와 가수를 초청해 직원들을 위한 행사를 여는 곳이 있다. 평소 놀이가 금지된 직원들을 위해서라는 취지는 좋지만 직원들의 자발성이 결여되면 ‘군부대 위문공연의 기업 버전’과 다를 바 없다.
직원들에게 자율을 보장하면 업무태만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리자가 많다. 부하 직원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런 관리자들은 일찍 출근해 장시간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직원을 성실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라질 기업 셈코는 직원의 자율성을 보장해 경쟁력을 높였다. 1980년대 후반 셈코의 최고경영자(CEO) 히카르두 셈레르는 엔지니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내(社內)에 ‘기술혁신의 핵’이라는 자율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업무 목표까지 스스로 정하는 자율조직에 전체 직원의 60%가 소속될 정도로 새로운 문화가 정착됐다. 특히 직원들에게 재무제표 교육을 실시해 셈코의 재무 현황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했다. 또 직원들은 자신과 비슷한 경력 및 기술을 보유한 동료와 비교해 자신의 급여 수준까지 결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직원들은 스스로 노력하면서 재고비용 감소, 생산기간 단축, 1% 미만의 불량률 등의 성과를 올렸다. 셈코는 브라질 경기회복기에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셈레르가 취임한 1982년과 비교해 2003년 이 회사의 매출은 50배, 직원 수는 30배로 늘었다. 10년간 연간 퇴직률은 1% 미만이었다.
셈코의 경영기법은 극단적 무정부주의처럼 보인다. 하지만 셈코 사례는 직원들의 자율성을 믿어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직원들의 자율성을 믿지 않고 하급 직원과 식당이나 엘리베이터도 함께 쓰지 않는 특권의식으로는 직원들의 놀이본능을 자극하기 어렵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 연구위원 yskim@igm.or.kr
정리=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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