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는 그대로 눌러앉아 있기만 하면 확실히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자민당 황태자’를 마다하고 1993년 집권당을 뛰쳐나갔다. 일본의 미래 청사진을 밝힌 ‘일본 개조계획’을 국민 앞에 제시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권력을 갈구해온 지 17년째. 1993년 비(非)자민 연립정권 수립과 지난해 정권교체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누가 뭐래도 자민당의 반세기 장기집권을 종식시킨 일등공신은 오자와다.
14일 대표선거 정견발표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고 호소하는 그는 비장했다. 그토록 강한 신념과 뚝심 때문에 ‘무섭다’는 인상을 줘 점수를 잃기도 하지만, 정적(政敵)인 간 총리의 부인 노부코(伸子) 여사조차 “알고 보면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로 정이 많다고 한다. 김치를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더 좋아하고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얘길 들으면 왠지 친근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의 강력한 리더십만큼은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그의 리더십은 인정한다. 20년 넘게 침체된 일본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어갈 대형 지도자에 대한 갈구다. 일본이 활력을 잃은 원인 중 하나로 정치 리더십의 실종을 꼽는 사람이 많다. 총리의 잦은 교체로 인한 선거와 정치 불안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엄청나다. 이런 일본을 하나로 묶어 용틀임을 하기 위해선 오자와 같은 인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국민은 끝내 오자와를 외면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능력을 인정받아도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인사청문회에서 주저앉곤 한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일을 재단하는 게 옳으냐, 정치인이 도덕가가 돼야 하는가 하는 논란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인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지 국민이 정치인을 따라 눈높이를 낮출 순 없다는 점이다. 누구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