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심상치 않다. 2%대 중반에 머물던 물가상승률이 9월에 3%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4분기 이후 내년까지 물가상승률이 3%대 중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보다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글로벌 소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경제가 나쁜데 어떻게 물가가 오를 수 있겠냐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비자물가지수 편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될 만큼 실제 물가는 의미 있게 오르고 있고 기대 인플레이션도 불안한 상황이다.
우선 우리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량인 잠재GDP를 이미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만들어 내려면 목표치보다 물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환율 하락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도 끝나가고 있다. 달러당 원화 환율은 올해 상반기에 작년 상반기보다 15%가량 절상됐으나 이제 전년대비 절상 폭이 5% 미만으로 떨어졌다. 아직도 물가 안정 효과를 주고 있긴 하지만 크기는 현저히 줄었다. 게다가 우리 환율 하락 폭은 앞으로도 빠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외환보유액 급증에서 알 수 있듯 정책당국이 달러를 사서 달러 가치 하락 속도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느슨한 통화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7월에 정책금리를 올렸지만 여전히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8, 9월에는 연달아 정책금리를 동결했다. 그러다 보니 단기 자금을 조달해 중장기 채권을 사는 투자자가 늘어 시장금리도 떨어지고 있다. 물가 안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중앙은행이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주체가 물가 안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