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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 카페]위기의 일본사회에 던지는 충고…리더 교체보다 정책지속성 강조

입력 | 2010-10-02 03:00:00

시오노 나나미의 ‘일본인에게’




시오노 나나미 씨

“일본에서는 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걸까?”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일본을 향해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사진)는 이렇게 묻는다.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는 일본사회에 던지는 문제 제기다. 사회적 병리현상을 조목조목 짚어가는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로마인 이야기’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시오노가 최근 내놓은 시사평론 에세이 ‘일본인에게’. 월간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 2003년부터 최근까지 기고한 에세이를 엮어 출판한 책이다. ‘리더편’과 ‘국가와 역사편’의 두 권으로 나온 책은 모두 출판 4개월 만에 각각 20만 부와 18만 부가 팔렸다. 특히 ‘리더편’은 출판 직후 단박에 일본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줄곧 상위에 올라 있다.

이 같은 인기에 대해 일본 출판업계는 시오노라는 브랜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출판을 담당한 분게이슌주 시마즈 히사노리(島津久典) 씨는 “현재의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일본인의 기대가 담겨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위기의 시대는 지도자가 빈번하게 바뀐다. 지도자를 바꾸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꿈꾸는 것일까. 하지만 그건 꿈일 뿐이다.” 2006년 이후 4년 동안 5명의 총리가 교체될 것이라고 암시라도 한 듯한 시오노의 통찰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고대 로마가 망한 것은 군사력이 약해진 것도, 경제가 쇠퇴한 탓도 아니다. 잦은 황제의 교체로 정책의 지속성을 잃었고 힘의 낭비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를 벗어나는 묘약은 없다”고 단언한다. “리더가 아무리 바뀐다 한들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흔히 정치는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나 회사가 망하면 피해를 보는 건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같은 서민이다. 정치만큼 서민생활에 직결되는 건 없다.” 정치적 혐오와 냉소주의에 빠진 일본인에게 던진 충고지만 남의 일로만 들리지 않는다.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이고 대학 졸업자의 절반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는 일본인에게 성과주의의 범람이 가져올 폐해를 지적한 부분은 일본인에게 위안이 됐을 것 같다.

“자극을 받아야 생산성을 내는 사람과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의 차이는 능력의 절대적 차이가 아니다. 안정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생산성 저하는 불가피하다. 성과를 재촉하는 불안한 사회구조는 하나에 집중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전통적인 미덕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성공비결을 철저히 ‘승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계일까. 역사라는 거울에 비춰 현실을 바라보는 특유의 서술방식은 명쾌하지만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인다. 일본인을 위한 충언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점도 간간이 눈에 띈다. 그는 “한중일 역사공동연구는 시간과 돈 낭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객관적 접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적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착실한 증거수집’에 투자하자고 제안한다. 더 무슨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나의 친구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이미지가 혼돈스럽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