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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칸 황금종려상 ‘엉클 분미’ 졸지 않고 보려면…

입력 | 2010-10-05 03:00:00

‘유체이탈’ 도전할 각오 먼저 해야




‘엉클 분미’. 사진 제공 백두대간

《수많은 신화의 존재가 이미 증명하듯, 인간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생산하고 전파하고 또 소비하려는 본능을 타고난 동물이다. 영화 속 서사(敍事)가 대개 기승전결의 흐름을 가지는 것도 일반 대중의 이런 이야기 본능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쪽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이 진화해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최근 개봉한 태국 아삐찻뽕 위라세타꾼 감독의 영화 ‘엉클 분미’. 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무척 낯설면서도 파괴적인 서사방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어렵다’는 생각보단 ‘황당하다’ 혹은 ‘졸다가 목이 뒤로 꺾여 죽을 뻔했다’는 소감이 더 즉각적으로 나온다. 그렇다. 엉클 분미는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 낯선 영화이다.》
줄거리를 요약해보자.

‘분미’란 이름의 태국 시골 아저씨가 있다. 신장이 좋지 않아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 분미는 어느 날 밤 처제인 ‘젠’과 ‘통’이란 젊은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저녁식탁에 19년 전 세상을 떠난 분미의 아내 ‘후아이’의 혼령이 나타난다. 잠시 뒤엔 원숭이 귀신에게 홀려 그들과 성교한 뒤 스스로 원숭이 귀신이 되어 사라졌던 아들 ‘분쏭’이 13년 만에 털북숭이가 되어 등장한다. 분미는 점차 자신의 전생을 떠올리면서 숲 속의 수많은 영혼들과 자신이 영혼의 공동체를 이뤘음을 깨닫는다. 그러곤 혼령으로 나타난 아내의 뒤를 따라 숲 속 동굴로 들어간다. 그리고 “난 전생에 이 동굴에서 태어난 적이 있어. 어젯밤 다음 생에 대한 꿈을 꿨어”란 말을 남기고 숨진다. 분미가 죽은 뒤 분미를 간호하던 통은 돌연 스님이 되어 있다. 통은 장례를 치른 젠이 머무르는 숙소에 찾아오고, 둘은 식사를 하기 위해 방을 나서려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통과 젠이 나가려는 순간 침대 위엔 자신들과 똑같은 통과 젠이 TV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런 식의 줄거리 요약도 일종의 관습에 속한다. 이렇게 뭔가 핵심적 중심 이야기가 있는 줄거리를 읽고 이 영화를 보면 굉장한 낭패에 직면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엔 분명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우리가 익숙하고 기대하는 대로 전개되진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포스터(사진)처럼 극적이지도, 비밀스럽지도, 긴박하지도, 심지어는 ‘졸가리’가 있지도 않다. 혼령들은 마치 조악한 어린이인형극에서 보듯 다짜고짜 쑥 나타났다가 영 신비롭지도 않게 사라진다. 이렇게 삶과 죽음, 육체와 혼령, 전생과 윤회라는 종교적, 형이상학적 키워드들이 질박한 인간들의 생활 곁에서 천연덕스럽게 함께하고 있는 것, 이 자체가 엉클 분미의 메시지다.

자, 엉클 분미의 이런 본질을 기반으로 해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다시 요약해보자. 이 영화의 뉘앙스를 고스란히 살려 줄거리를 정리하면 정말 낯설고 황당한 스토리텔링이 된다. 이렇게.

‘분미’란 시골 아저씨가 있었네. 신장병을 앓아 죽음을 앞두고 있네. 처제인 ‘젠’과 ‘통’이란 젊은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분미. 식탁 빈자리에 19년 전 죽은 아내 ‘후아이’가 나타나네. 안녕, 후아이. 보고 싶었어. 아, 이런 집안의 경사가. 13년 전 원숭이 귀신이 된 아들도 나타났네. 그래. 전생이 생각나. 옛날 옛적 얼굴이 못생긴 공주가 있었는데. 자신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준 물속 메기를 만나 성교를 했네. 메기가 공주고 공주가 메기네. 메기가 분미고 분미가 공주네. 죽음이 삶이고 영혼이 인간이네. 아, 나 이제 아내의 영혼을 따라가리. 그리고 영혼과 육체가 오가는 삶 속에서 인간은 깨달음을 얻으리니. 청년 ‘통’이 스님이 되고, 스님이 영혼이 되고,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지만 분리되지 않은 것과 같다네….

어떤가. 이 영화에 한번 도전해 보고픈 생각이 드시는지. 상영시간 113분을 당신이 만약 온전히 견뎌낸다면 당신 또한 유체이탈을 경험하리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