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은 자연 상태에서 가공이 쉽고 부식이 잘 되지 않는 데다 다른 물질들과 쉽게 반응해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여러 용도로 사용된 금속이었다. 특히 고대 로마인들의 납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로마인들은 납으로 만든 수도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납으로 만든 그릇에 요리를 담았을 뿐만 아니라 납을 직접 먹기까지 했다.
납 그릇에 포도즙을 넣고 졸이면 포도 속에 포함된 유기산이 납 성분과 반응해 단맛이 나는 아세트산납이 형성된다. 아세트산납은 로마의 대표적 감미료였다. 이런 로마인들의 생활 습성 탓에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납 중독이었다는 가설이 존재할 정도다. 납이 체내에 유입되는 경우 소화기계, 조혈계, 비뇨생식계, 신경계에 영향을 줘 빈혈, 신장 이상, 정자 생성 이상, 유산과 사산, 신경 이상 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 시대도 아니고 이미 납의 체내 중독에 대한 위해성이 충분히 알려진 21세기에 도대체 청년은 어떤 방식으로 납을 먹게 된 것일까?
아이에게 나쁜 버릇이 없었다면, 장난감이 유독하지 않았다면, 혹은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아이의 버릇을 적절한 시기에 교정해 주었다면 아이는 평범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비극의 고리가 한꺼번에 맞물려 비극이 발생했다. 우리가 환경 문제에 한시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난감을 씹는 아이를 보고 “가끔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무심한 마음과 아이들의 건강이 아니라 기업 이윤만을 중시하는 이기심이 각각 존재할 때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결합하는 순간 나타나는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장난감을 무는 아이가 있는지 한 번쯤 주위를 둘러보자.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