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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덕환]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없애자

입력 | 2010-10-07 03:00:00


우리는 세상이 문과와 이과로 나눠져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적성과 능력도 그렇고, 학문 세계도 그렇고, 세상만사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해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불필요한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심지어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넘어서는 교차지원이 공정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죄악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우리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잘못된 관행에 젖어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교육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근거 없는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공교육을 황폐화하고 사회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다수인 70%의 문과 학생이 과학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가장 기본적인 과학 상식조차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환경 생태계 기후변화 광우병 신종인플루엔자 같은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당연하다. 결국 국토개발과 보건·위생분야에서의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과 학생을 위한 과학 교육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공계 대학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래서는 우리 사회가 세계화시대의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자칫하면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의 꿈이 모두 물거품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길은 하나뿐이다. 공교육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확실하게 철폐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학생에게 수준 높은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일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미 우리는 그런 교육의 위력을 충분히 경험했다. 1987년까지는 문과 학생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과학을 가르쳤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과 발전이 그런 교육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다수의 학생이 스스로를 문과형이라고 인식하고 오늘날의 과학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과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결국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어쩌면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해결 방법일 수 있다.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를 문과형으로 전환해서 인문학적 소양 교육에 집중하자는 뜻이다. 이과 학생에게도 철저한 국어와 사회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도 사회 속에서 글과 말을 통해 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과학 교육을 포기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민주화된 과학기술시대에 과학 교육은 선택의 대상일 수가 없다. 그러나 위계(位階)적 과학 개념의 교육을 핵심으로 하는 현재의 과학자 양성용 과학 교육에서는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그런 교육은 과학고와 과학중점고에 맡기고 이공계 대학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일반 학생을 위한 과학 교육은 현대 사회가 절박하게 요구하는 과학적 인성의 함양이 목표여야 한다. 학생이 극단적인 생태주의와 자연주의의 오류를 인식하고 사회적 갈등과 분열 해소를 위한 민주적 절차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소양을 길러줘야 한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융합형 과학이 시작일 수가 있다.

교사들의 인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 학교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을 위해서 존재한다. 학생에게 필요하다면 아무리 힘든 변화도 감수해야만 한다. 이제 학생에게 과학의 개념이 아니라 과학의 의미와 가치를 가르쳐 진정한 민주시민으로 기르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