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곽재구의 ‘김치찌개 평화론’에서>
김치찌개는 대한민국 국민음식이다. 직장인들의 ‘국민찌개’이다. 점심엔 김치찌개에 밥 한 공기로 마음에 점을 찍고, 저녁엔 얼큰한 김치찌개 안주로 술잔을 기울인다. 김치찌개는 대한민국 한식당의 감초메뉴이다. 한식당 차림표에 김치찌개가 없다면, 그 집은 장사 안하기로 작정했다고 봐야 된다. 아니다. 김치찌개 하나 제대로 요리할 줄 모른다면, 다른 음식은 보나마나 뻔하다.
술꾼들은 술집 안주메뉴판에 김치찌개가 없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어느 집이든 김치찌개 정도야 슬쩍 주인에게 부탁하면 금세 자글자글 끓여내 온다. 김치찌개 요리는 라면 끓이기만큼이나 쉽다. 레시피도 간단하다. 김치, 돼지고기, 두부 정도에 다진 마늘, 풋고추, 고춧가루, 소금 등만 있으면 누구나 기본 맛을 낼 수 있다.
김치찌개의 주인공은 역시 김치다. 김치가 맛이 없으면 김치찌개도 영 그렇다. 김치찌개엔 묵은 지가 기본이다. 묵은 지는 최소 1년은 넘어야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다. 옛날엔 3년 묵은 지도 흔했다.
묵은 지는 김장할 때 아예 따로 담는다. 배추를 쉽게 삭게 하는 젓갈이나 무채 등 다른 양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속이 꽉 찬 배추보다는 푸른 겉잎이 많은 배추를 쓴다. 천일염도 듬뿍 뿌린다. 오래 묵힐 것일수록 더 많이 넣는다. 김칫독은 시원한 대숲이나 뒤란 응달에 묻고, 그 위에 볏짚으로 거푸집을 해준다.
요즘 일반식당의 김치찌개는 ‘묵은 지 공장에서 사다가 쓰는 게’ 보통이다. 김치가 같으니 김치찌개 맛도 비슷하다. 국물도 사골육수나 멸치육수를 쓰지 않고 맹물이나 고작 뜨물을 쓴다. 깊은 맛이 날 리 없다. 김치공장에선 오랜 시간 발효시켜 묵은 지를 만들지 않는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강제숙성’시킬 수밖에 없다. 마냥 시간을 기다리다가는 생산비용을 맞출 수 없다. 그렇다고 자그마한 밥집에서 1년 넘는 묵은 지를 담가 쓰기엔 비용이 너무 크다. 해마다 묵은 지를 담그는 일이 어디 보통일인가.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내로라하는 김치찌개 전문식당에서는 나름대로 묵은 지를 차별화시키려 애쓴다. 김치공장과 계약을 하거나 시골에서 묵은 지를 공급받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전문식당에서조차 보통 서너 달 숙성시킨 ‘익은 지’를 쓴다. 묵은 지와 익은 지는 질적으로 다르다. 묵은 지는 깊은 맛이 나고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익은 지는 너무 익으면 시어터지거나 쓴맛이 난다.
김치찌개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돼지고기이다. 돼지고기는 목살이나 앞다리살 혹은 삼겹살을 쓴다. 정육점을 하다가 김치찌개가 주업이 된 식당도 곧잘 눈에 띈다. 식당 이름도 ‘정육점’이라고 붙어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현대정육식당(02-540-7205)이나 뚝섬 성일정육점(02-2292-6696) 등이 그렇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을지로4가 방산시장 은주정(02-2265-4669)은 낮엔 김치찌개만 팔고, 밤엔 삼겹살만 판다. 삼겹살을 구워 먹다 보면 김치찌개가 무료로 곁들여 나온다.
김치찌개는 ‘엄청 센 불에 눈 깜빡할 새 끓여내야’ 맛있다. 약한 불로 오래 끓이면 칼칼한 맛이 사라진다. 묵은 지는 원래 담백하다. 짭짤하지만 시지 않다. 익은 지가 오래되면 시어터진다. 김치가 너무 시면 생김치를 약간 섞으면 된다. 양은냄비에 신 김치를 넣어 끓이면 김치의 산(酸) 성분 때문에 냄비의 알루미늄 성분이 녹아든다. 뚝배기나 스테인리스냄비가 낫다.
요즘 배추가 금값이다. 상추로 삼겹살을 싸먹는 게 아니라, ‘삼겹살로 상추를 싸 먹는다’는 우스갯말까지 나왔다. 김치는 아예 ‘금치’를 넘어 ‘다이아치’란다. 배추김치 추가 주문 땐 2000원씩 더 받는 식당도 있다. 큰일 났다. 김치찌개가 귀족찌개가 될 판이다. ‘다이아찌개’가 되게 생겼다.
생김치는 오래 끓이면 잎이 오그라지고 흐물흐물해진다. 원래 맛이 사라진다. 익은 지나 묵은 지는 웬만큼 끓여도 사각거리는 맛이 남아 있다. 씹는 맛이 좋다. 칼칼하고 개운한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사람도 그렇다. 묵은 지 같은 사람이 으뜸이다. ‘억지로 익힌 공장 묵은 지’ 같은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김영천의 ‘묵은 지’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