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위원회가 8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한 류샤오보(劉曉波) 변호사 겸 작가는 중국의 반체제 운동과 인권 운동의 상징이다.
1955년 12월 지린(吉林)성 창춘(長春) 태생인 류샤오보는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지식청년(知靑)이라는 이유로 지방으로 내려가 건축공사 근로자를 전전했으며 1977년부터 지린대학 중문과에 입학해 1982년에 졸업했다. 학사학위 취득 후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하고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류샤오보는 그런 후 미국의 컬럼비아대학과 오슬로대학, 하와이대학 등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면서 특강을 한 경력이 있다.
류샤오보가 반체제 운동에 눈을 뜬 것은 1980년대 중반기로 중국 사상계의 '덩샤오핑'으로 불리는 철학자인 리저허우(李澤厚)를 비판하는 글을 쓴 게 계기였다.
그러던 중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발생하자 미 컬럼비아대학에 머물던 류샤오보는 중국으로 날아와 민주개혁 요구에 동참했다. 중국 당국이 톈안먼사태를 군화발로 짓밟은 후에는 진상조사 요구를 하다가 형극을 길을 가게 된다. 류샤오보는 허우더젠(侯德建), 가오신(高新), 저우둬(周舵) 등과 함께 '톈안먼 4군자'로 불리기도 했다.
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이틀 후인 6월 6일 중국 공안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류샤오보는 강단에서 쫓겨나는 공직박탈 조치를 당하고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 중국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그 때부터 중국 공안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된 류샤오보는 1995년 5월에 베이징(北京) 교외에 1년여 감금됐다가 1996년 10월에 '사회질서교란죄'라는 명목으로 법원에서 3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럼에도 류샤오보는 필봉을 놓지 않은 채 작가활동을 계속했으며 정부를 공격하고 중국 국민의 인권에 주목했다.
류샤오보는 미국과 홍콩의 단체들이 주는 인권상을 수차례 수상했으며 '선택의 비판-리저허우와의 대화', '심미와 인간의 자유', '알몸으로 하나님에게 ', '중국당대정치와 중국 지식인', '양심적으로 말하는 민족', '미래의 자유중국은 민간에', '단인독검-중국당대민족주의비판'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류샤오보는 중국 당국의 중점 감시 대상이 돼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되면 감금을 당하는가하면 외출은 물론 전화까지 차단돼 사실상 외부와 격리돼야 했다. 류샤오보는 2007년에 중국 밖의 외부 매체에 쓴 글이 문제가 돼 잠시 중국 당국에 억류됐다가 지난 200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발표된 '08헌장'을 계기로 장기 구금된 상태다.
바클라프 하벨 전 체코대통령 등이 1977년 발표하고 그 12년 후 체코의 평화적 혁명의 구심역할을 한 '77 헌장'을 본뜬 '08헌장'은 중국 당국에 광범위한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이 때문에 류샤오보는 곧바로 공안당국의 감시를 받다가 급기야 2009년 6월 23일 국가 전복선동혐의로 체포됐다.
6개월여 조사 끝에 2009년 12월 25일 베이징제1중급인민법원에서 국가전복선동죄로 징역 11년형에 2년 정치권리 박탈형을 받아 항소했으나 지난 2월 11일 베이징고급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류샤오보는 현재 랴오닝(遼寧)성 판진(盤錦)감옥에서 복역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