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하자 일본의 민관(民官)은 일제히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은 “일본이 세계화 흐름에 뒤처질 수 있다. 국경의 울타리가 낮아지는 시대에 쇄국(鎖國)과 같은 상황에 부닥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토야마 미키오 샤프 사장은 “한국 제품에 대한 EU의 관세 인하분을 일본 기업들이 자력으로 커버하기 어렵다”고 걱정했다. 일본의 아시아경제연구소는 일본이 한국에 연간 30억 달러의 유럽시장을 내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도 한-EU FTA 서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한미 FTA를 조속히 발효시키기 위해 비준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데이비드 캠프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EU FTA 서명은 미국이 경쟁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당장 FTA 비준을 서두를 가능성은 낮지만 한-EU FTA에 자극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한국이 미국 인도 EU 등과 잇달아 FTA 협상을 성공시키면서 ‘FTA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대한 우리 야당들의 반응은 대조적이다. 민주당은 “한-EU FTA는 국민적 논의과정이 생략돼 소통에 문제가 있다”면서 특위 구성을 주장했다. 우리가 EU와 FTA 협상을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5월이었다. 두 정부에 걸쳐 3년 5개월이나 EU와 협상을 했는데 그동안 뭘 하다가 논의과정 생략이니 소통 부재니 하면서 ‘뒷북’을 치는가.
민주당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조배숙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등 야당의원 32명은 한미 FTA 전면 재협상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한미 FTA가 한국에 더 유리하게 체결됐다며 비준을 미루고 추가 협상을 요구하는 판에 불쑥 우리 쪽에서 나온 재협상 요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미 FTA를 체결한 노무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정동영 천정배 의원이 재협상 운운하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도 옳지 않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고 국민소득과 일자리를 계속 늘리려면 자유무역 확대는 다른 대안이 없는 선택이다. 야당이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장래가 걸린 사안에서 발목 잡기에 열을 올린다면 경쟁국들을 돕는 행위나 마찬가지다.